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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주저리 주저리

[늦은 일상] 폭우가 쏟아지는 중에 오래간만에 간 대구

by Esther♡ 2023.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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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대구로 향했다.

벌써 되고 안되고 결정을 알았을 만큼 늦은 이야기지만, 비가 그렇게 미친듯이 쏟아지던 화요일. 안갈 수 없는 일로 대구로 향했다.

 

그렇게 달려가서 무슨 정신으로 볼일을 보고 나왔는지…!ㅠㅠ

 

 

그렇게 볼일보고 진이 빠진 상태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환승정거장이 있는 지하철 역으로 나오니 비가 정신없이 내린다.

 

굵은 빗방울로 아주 때리듯이 내린다.

그렇게 진빠지고 때리듯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근처 카페로 피신하여 습하게 더운 덕에 아이스 티와 작은 치즈 케익 한조각으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면서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덕분에 이러저러해서 잘 쉬고 잘 먹고 잘 머물다가 나왔다.

 

대구 3호선은 지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선로가 떠 있어서 그걸 타고 한정거장 더 가면 있는청라언덕으로 갔다.

역으로 나가서 따라가니 몇년 전에 서문시장에서 계명대 부속 동산병원 뒤로 갔을 때와 반대되는 경로로 차근차근 가는 것 같았다.

 

 

근대역사골목의 초입이기도 하고 청라언덕 및 선교사님 사택들이 있는 곳 입구로 접어드는데 코로나 19를 기억하기 위한 건물을 지나서 건물 뒤에 자리 잡은 치즈냥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주 팔자좋게 늘어져있어서 신기했는데 누군가의 돌봄이 있는지 옆에 작게 사료같은 것이 놓여있었고 어지간하면 들고양이일수록 더욱 더 사람 경계하고 도망가기 바쁠텐데 이녀석들은 인기척이 있어도 '어~ 왔냐? 귀찮게 하지 말고 마  가던 길 가라~!'는 표정으로 귀찮다는 듯 있는 게 황당하기까지 했다.  

 

 

바깥 쪽에 있던 아이의 앞발을 톡톡 건들여도, 쓰담쓰담해도, 심지어 동물들이 제일 싫어하는 꼬리 잡고, 끝엔 심지어 당기기까지 해도 공격하지 않고 또 귀찮은 놈 나타났다…. ( ̄_ ̄|||) 하는 표정이다.

안에 있으면서 날 주시하며 째려보며 그나마 경계하던 녀석은 이 놈이 언제가나 하듯 보는데 이 고양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엽다.^^

너무 심하게 관심보였던 것 같은데 사실 몇년전에도 동산병원 뒤로 해서 왔을 때도 본 것 같은데…?(´◡`;;) 

 

 

비가 쏟아지는데 내가 작정하고 찍은 것도 아닌데 내리는 빗방울이 카메라에 다 잡혔다.^^

그리고 옷은 홀딱 다 젖었는지는 몰라도 비내리는 날에 오는 감성이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많은 사택건물들이 사라지고 3채만 남아 있지만, 그래도 암흑기에 외국 선교사님들이 세운 제중원을 시초로 커진 동산병원의 구관 입구와 1970년대 초 미국 북장로교 Van Cleve선교사님이 가져온 설계도를 바탕으로 대구 한성 데디칼의 고 최운한 대표님이 국내 최초로 제작한 고압산치료기도 2012년 까지 약 40년간 사용하고 퇴역이후 함께 보존되어 있기도 하다.

 

 

근대역사 골목 탐방으로 가볼만한 곳이다.

우중에 사진을 찍으면서 사택 건물 주변을 돌면서 물이 고여 있는 줄도 모르고 문화해설사가 있는 건물 근방으로 가다가 유일하게 있는 문화해설사님이 가는 길 앞에 물이 고여있어서 못 간다고 제지하셔서 정신차리고 보니 앞에 비로 인해 길이 안보일 정도로 빗물이 잔득 고여 있었다.

이런 걸 잘 보완하고 잘 대처했으면 싶다.

 

창고 같은 공간도 비오거나 하면 물이 고이면서 침수될까 두려운 사택 건물도 있었다.

 

 

양화진에도 그렇고 암흑기에 이 나라에 와서 풍토병이나 여러 이유로 자녀와 가족을 묻고도 맡은 사명을 가지고 끝까지 이루고는 본인도 이 땅에 묻히거나 그런대로 번영하고 발전하는 것을 보고 본국으로 떠났다가 본국송환 이후 은퇴하셔도 한국땅에서 묻히길 바라셔서 소천 이후 한국땅에서 묻히길 바라셔서 한국땅에 묻히시는 경우가 있는데 서울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 있다면 지역에 이렇게 묘원이 조성되어 있거나 한국 땅 어디엔가 영면하시는데 여기도 은혜동산이란 이름으로 선교사님이나 후손이 영면한 장소가 있었고 문화해설사 분의 안내로 갔었고 배려로 울타리 안에 들어가서 참배할 수 있게 되었는데 잠시 사진한장 남길 수 있게 해주셨는데 음…! 절 단신으로 남기셨어요. (┬┬﹏┬┬)

 

그렇게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잠잠했던 비가 진짜 퍼붓듯이 쏟아지는데 식겁했다.

 

 

얼마나 퍼붓는지 아마 이때 갈아입은 옷은 물론이고 소지품들이 다 젖었을 것이다.

삼단우산도 아니고 비닐우산이라도 큰 우산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다 젖었으면 우산 쓰나 마나일 정도였다. ^^;;

아이고~!

 

 

청라언덕에 보면 신축건물로 지어진 교회당이 있었다.

대구 최초의 교회인 대구 제일교회인데 1893년에 설립된 교회로, 지금 남성로에 위치한 구 본당은 1933년에 건축한 것이고 이후 1996년에 지금 이 자리 중구 동산동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나중에 나오겠지만 대구제일교회 구 본당 건물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2년 1월 7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30호로 지정되었다는데 경산에 있는 경산교회도 구 예배당이 문화재로 인정받아서 보존되고 있는 걸로 안다.

 

비가 쏟아지면서 그냥 여기까지 보고는 신명고등학교 쪽 길을 타고 내려왔는데 신명고등학교도 구한말에 조선으로 파송된 선교사님께서 선교회 소속으로 개교한 여학교였고 지금은 남녀 공학 고등학교로 정착된 것 같았고 일제시대 독립운동하던 학생들이 나왔던 모양이다.

 

그렇게 내려와서 독립운동하면서 감시하는 눈을 피해 다녔다던 3.1운동계단을 왔었는데 감히 이날은 올라갈 생각을 못 했다.

안그래도 우산을 쓰나마나할 정도로 옷이 젖었고, 사진에서 제대로 보이는지 몰라도 물이 계단을 타고 콸콸거린다 싶을 정도로 내려와서 올라갈 생각을 못 하고 그냥 눈에 담고 사진에 담은 뒤에 계산성당을 지나 이상화 생가로 향했다.

 

 

그냥 점심도 먹을만한 곳도 없고 뭘 먹고 싶단 생각이 안나서 일단 여기저기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을 다 둘러봤었다.

어림잡아 몇키로는 걸었던 것 같다.

집에 오니 전보다는 심하지 않은데 우리하게 발목을 포함해서 다리가 좀 아픈 것을 보니.^^;;;

 

 

그러다 마지막 손님으로 대부분의 재료가 소진된 국수집에 들어갔는데 남아있는 메뉴들 중에 얼큰 칼국수가 있어서 그냥 감칠맛있게 매운 맛인줄 알았더니 정신이 번쩍 드는 매운 맛이길래 나중에 시뻘겋게 되서 당황한 표정으로 말도 못 하고 매워하는 날 보시고는 다음에 오면 매운 걸 좀 덜 할 수 있게 말해달라고 걱정스레 말씀하시더라.^^;;

 

본래 매운 걸 잘 못 먹는 것도 아니고 잘 찾아 먹는 나였기에 민망하기도 하고, 퍽 당황스러웠지만 맛없지는 않은 칼국수.

내가 메뉴선택 미스이기도 하고 칼국수 양이 적어서 아쉬웠지만 밥 말아 먹으라고 주는 조금 주는 밥 한공기가 적당히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폭우로 여기저기 뚝이 터졌다, 하천이나 강이 넘친다, 물에 잠겼다, 산이 무너지고 물에 잠겨서 사람이 죽고 다쳤다 등등의 뉴스에 걱정하시던 아버지께서 하신 전화도 있고, 날씨가 걱정이라 부랴부랴 더는 안늦게 울산으로 향했다.

 

안그래도 지하철이 지나가는 노선 중에 신천이 있었고 거기 둔치가 잠기고 넘치려한단 긴급 문자에 심장이 벌렁거리면서 '그냥 집에 곱게 가고 싶어요. 살아서 가게 해주세요.' 속으로 간절히 빌었던 것 같다.

잘 내려오고는 결국 뻗었다만은 오래간만에 대구다녀와서 그동안 갑갑하고 힘들었던 것이 일부 덜어냈어 살 것 같았다.^^

 

가야했던 일의 결과는 뜻대로 안되었지만 대구에는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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