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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 여자의 방랑기/걸어서 세계 속으로 1

2015년 10월 26일 양화진, 경복궁 & 국립민속박물관

by Esther♡ 2019.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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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9.에 작성한

 

 

벌써 한달도 전인 11월 26일날 아침, 

전날 뮤지컬 배우 생일파티가 있는지라 모임있다는 미명하에 일찍 올라와 두근 반 세근 반 즐겁게 지내고 술 한방울도 못 하는 위인인데 첨 화이트 와인 한잔 했다가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레드 와인까지 두어잔 마시고 알딸딸해서 텐션-업되서 진정하기 위한 끈을 잡고 즐겁게 있다가 숙소인 호스텔로 안전하게 돌아왔는데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호스텔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조식을 먹고 대학 신입생 때부터 벼르던 양화진으로 향했더랬습니다.

지하철 양화진 역에서 골목으로 얼마가지 않아서 힘들게 찾지 않았어요^^

 

 

 

양화진 입구입니다.

예약을 하지 않아도 시간에 맞춰서 가면 쉼터 쪽인가 해설안내해주실 자원봉사자 분들이 계셔서 요청하면 해주신다고 하네요 저는 시간에 맞추긴했는데 일주일 전에 예약을 해야한다는 조건을 보고 하지 않았던 탓에 미안한 맘이 들어 한바퀴 정중하고 경건한 맘으로 예를 다해 방문했어요.

이 땅에 선교사로 발을 딛이셨던 분들 중 헤른이란 분이 돌아가시면서 장지가 필요하여 당시 조선 관계자들과 실랑이 끝에 양화진에 안장하게 되었고 뒤에도 쭉 그렇게 조선(혹 한국)에서 돌아가시거나 묻히길 원하셨던 외국인선교사님이나 가족, 혹은 자녀들이 묻혔어요.(양화진에만 묻히신 것이 아닌 대구나 전주, 등등 당시 사역하시다가 돌아가신 지역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묻히신 선교사님들도 계세요.^^)

이후 해방되고 6.25사변을 겪고 방치되어 있던 중에 미군이나 외국 상인/사업가가가 묻히거나 한국인 중에 돈을 주고 ​땅을 사서 묻히기도 해서 지금 관리하시는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에서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다듬어지고 정비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죠

 

 

아가들이 쉬는 구역. 선교사님의 자녀분들도 있겠지만, 당시엔 한국의 의료기술도 별루였고 풍토병이나 전염병 예방이 못 하던 상황에서 선교사님이든 아니든 아이들이 제일 치명타가 될 수 밖에 없었을 테죠...^^

 

 

언더우드 가(家)에요. 1대인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부활절날 아펜젤러 선교사님과 함께 한국 땅 밟으시고 의사이자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 전문학교를 세우셔서 의료와 교육, 성경번역 등 힘쓰시고 일제에 의해 반일인사로 여겨질만큼 한국민중과 연대하는 선교사로 친일 성향의 선교사들과 일제에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이셨던 굵은 흔적을 남기고 대를 이어 한국을 위해 힘쓴 선교의 가문이네요.

 

 

 

 

조선인보다 더 조선을 사랑했던 호머 헐버트선교사님.

처음엔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교육자로, 훗날 감리교 선교사이자 감독이자 역시 교육자로 조선에 발을 딛이셨죠.

어지러운 시기에 일본의 만행을 보았고 고종의 정치적, 외교적, 문화적 자문을 하는 역할을 하며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의 외교 및 대화 창구 역할을 해왔으며 고종 황제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은 외국인이었어요.

해방 되기 전 일제에 추방 당하기 전까지 조선을 위해 일하고 일제에 항거하며 조선의 독립을 지지하며 암울한 조선을 조선 사람들 보다 더 아파하고 아끼며 사랑하신 분,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다시 한국에 들어와 힘써 일하셨던 분이십니다.

자신의 고향 땅에 묻히기 보다는 눈감는 순간에도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하신 유언대로 2살 때 죽은 자신의 아들이 묻힌 양화진에 묻히셨던 헐버트 선교사님은 한국사 교과서나 역사 책 외에도 한국에서 활동하셨던 선교사님들의 자서전에도 종종 등장하셔서 많이 익숙한 분이세요...!^^

 

 

아펜젤러 선교사님. 가족도 같이 묻혀 계셨던 것 같은데 가물가물...!-_-;;

 

선교 관련 수업이나 오리엔테이션 훈련에 듣기론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언더우드와 함께 외교관이나 사업가가 아닌 선교사로서 첫 발을 딛으신 분이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배재학당을 세우시기도 하고 마지막 배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자신은 능히 사실 수 있는데 물에 빠진 조선아이를 살리려다가 돌아가셔서 시신조차 못 찾으셨다네요...! 너무나 슬프고 감사하기도 하고...!ㅜㅜ

 

 

 

셔우드 홀 선교사님이라면 [조선회상]​과 결핵, 크리스마스 씰이 먼저 생각이 나네요.^^

이 분도 부모, 형제, 자녀를 묻어가며 이 곳을 위해 일하고 어거지로 만든 꼬투리란 꼬투린 다 잡혀서 추방되어 인도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할 때까지 이 땅에 결핵을 퇴치하기 위해 애쓰신 의료선교사이십니다.

어머니인 로제타 셔우드 홀 박사가 봐도 아들은 자신들 부부처럼 의사로서의 재능은 없어보이고 되려 일찍 떠났지만 어린 유복딸 에디스 마그리트가 의사로서의 자질이 보였다고 해요. 

미국에서 사업가로 살려던 셔우드 홀 선교사님은 원산에 있는 R.A.하디 선교사의 설교를 듣고 감화되었고 누이처럼 따르던 박에스더가 결핵으로 죽는 것을 계기로 의사가 되어 결핵퇴치와 계몽에 힘쓰고 무지한 조선인들의 미신들과 싸우면서 치열하게 사셨어요.

1대인 윌리엄 제임스 홀 선교사님과 로제타 홀 선교님도 의료와 맹인 및 장애인들을 위해 일하시고 윌리엄 제임스 홀 선교사님은 전염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시고 유복녀인 마가렛도 두어살도 안되어 남편 옆에 묻은 로제타 홀 선교사님도 천수를 누리고는 남편과 딸이 있는 양화진에 묻히시고 아들인 셔우드 홀 선교사님 내외 분도 쌍둥이로 얻었으나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들과 함께 부모님 옆에 함께 묻히셨네요. 결핵 퇴치 및 계몽을 위해 고안해 냈던 크리스마스 씰도 셔우드 홀 선교사님께서 만드셨다는 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한국 고아의 아버지 소다 가이찌와 부인 우에노 다끼.

술취해 길에서 죽을 뻔한 소다를 조선인 청년이 구해준 것이 고마워 1905년에 와서 서울 YMCA 일본어 선생으로 취직하셨어요. 이무렵에 수감 중 예수를 믿게 되었다가 풀려 나온 이상재 선생을 만나 기독교인이 되고 아내를 만나 결혼하기도 합니다

 

소다는 105인 사건(1911년)으로 YMCA 동료들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자, 일제의 만행을 공격하면서 동료들의 석방을 위해서 백방으로 힘쓰셨어요. 이 때 한국인들로부터 감사와 찬사도 들었지만, 간사한 일제의 간첩이라는 비방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고아들을 위해 일하면서 버려진 아기를 업고 유모를 구하다가 면박을 당하기도 하고 자신이 돌보던 고아 청년이 항일 운동하다 비방당하기도 하는 등 한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모욕을 당해가면서도 일본인이면서도 한국인과 한국을 위해 일을 했었고  패망 후엔 소다 가이찌는 일본에 들어가 조국 일본의 회개를 촉구하였고 우에노는 한국에서 고아사업을 계속하던 중 먼저 세상을 떠났고 소다 가이찌는 1961년 초청받아 한국에 들어오셔서는 고아원에 함께 생활하다 돌아가셔서 아내 옆에 묻히셨네요.

일제시대 일본인이라고 조선인을 괴롭히고 압제하며 못 살게 굴던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잘못을 반성하도록 촉구하고 약한 사람, 도움이 필요하고 정의로운 사람을 돕고 항거하며 의를 위해 살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때마침 로제타 셔우드선교사님 및 셔우드 홀선교사님과 관련​된 전시도 했었는데 1월달까지라고 하던 것 같은데 방문하기 전에 들릴 거라면 미리 문의해보세요.

(※ 양화진외국인선교묘원 문의 전화 02)332-9174,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www.yanghwajin.net/)

 

나오는 길에 서울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 기회가 된다면 해설시간에 맞춰 올 수 있음 언제든 다시 오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번 방문이 첨이자 마지막일거라고는 생각 못 하구요.

근처에서 점심 먹고는 그 길로 경복궁으로 향합니다.​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나오면 바로 코 앞입니다. 뭐 좀 걸으실 각오가 되셨다면 5호선 광화문역​을 이용하셔도 되요^^

 

 

이렇게 안쪽만 보는 것은 아쉬워서 표 끊기 전에 잠시 밖으로 나가봤습니다.^^;;

 

 

광화문 밖으로 나왔을 때 이렇게 ​수문장들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 사진찍는 사람들이 많네요. 결국 외국인들이 다 인데 저도 찍고 싶었는데 누구에게 부탁을 해야할지...!!^^

​결국 검은 머리이신 여자 분들에게 "혹시 한국 분이세요~? (수문장을 가리키며)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라고 요청했을 때 알아들은 것처럼 시원하게 해주시겠다고 하시길래 저도 찰칵~! 했는데...!

 

 

뭔가 이상해서 "Where are you from...?^^;;"하고 물으니 "Singapore~!^^"이란 말에 제 웃는 얼굴이 그 웃는 표정 그대로 급속 냉각이 되어 식은 땀만 주르륵이 되더군요. 제가 사진 부탁할 때 몸짓으로 자신들도 찍어달라길래 흔쾌히 찍었더랬습니다.

영어를 어느 정도 의사전달이 될 정도의 조합과 몸짓으로 세 번찍고 찍기 전에 하나 둘 셋~! 할거라고 전하고는 찍으려는데 제가 제 사진 부탁할 때 들고 있는 제 카메라와 실력의 갭이 큰지 옆에 중년의 백인 아저씨께서 오셔서 손 끝으로 잘 찍을 수 있도록 가르켜주셔서 요행이 사진 찍어주고는 도망치듯 성문 안으로 들어가버렸네요.^^

 

 

 

용케 티켓을 사고 들어가는데 월요일 낮인데도 사람들이 엄청 많네요.^^;;;

오전에 양화진은 워낙 경건한 분위기에 예의를 갖춰야하는 조심스런 장소여서 그런지 몰라도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여기는...! 사람에 치일 것처럼 많더군요...!^^;;

하지만 경복궁 옆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중국을 포함한 중화국가에서 온​ 듯한 관람객들의 비매너 행동과 홍수처럼 밀려드는 인원수에 치일 것을 몰랐기에 식겁을 했겠죠....!!^^;;;

 

 

 

여기는 정 몇 품일까요? 흐릿해서 잘 안보이네요.^^

 

 

 

드라마를 보면 궁중에 행사가 있을시 좌우에 정, 종품의 대신들이 예복을 입고 예를 갖춰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 저 비석들이 해당 품계의 자리를 알려주는 알림판 같은 거죠 ​~.^^

 

근정전. 한번씩 다큐멘터리나 사극에서나 보아오던 근정전의 내부는 어떤지 무척 궁금했었는데 무척 설레네요^^

 

 

뒤의 병풍에는 해와 달, 소나무를 그린 거란 것쯤은 다들 아시겠지요...?^^

다만 난방이 되겠금 해놓은 구조는 아닌지라 많이 겨울엔 많이 추었을 것 같에요.^^ 그래도 함부로 못 쳐다볼 높이로 만들기는 한 것 같아요.^^

 

 

 

 

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전 사학과 쪽으로 공부했다면 전 땅파러 다니는 것도 하겠지만, 건축이나 조각, 의복 및 장식구, 기타 사회/문화적인 것들을 많이 파고 들었을 것이고 세계로 돌아갈 여건이 되면 여러 성들이나 옛날 건물들이 잘 보존이 된 곳들을 많이 찾아 다녔을 것 같아요...!^^

건축양식이나 의복 등을 ​보면 각 나라별, 시대별로 특징이 잘 들어나서 좋아보이더군요. 그래서 좋아요.^^

 

다음은 보아하니 동궁을 먼저 들린 모양이네요^^

 

 

 

 

동궁을 보면 양쪽 방을 어떻게 쓰였을지 짐작할 수 있도록 잘 꾸며 두었더군요.

그래서 한국사를 다른 다큐를 보거나 공부할 때 실제로 보는 것이 아니다보니 장님 코끼리 만지듯 보고 듣기만해서 어려웠던 구조는 이제 까막눈인 것은 어느 정도 벗은 듯해요.

동궁 담장을 넘으면 동궁 일원이 나와요.

10월 말이라서 그런지 은행잎이 이쁘게 물들었고 여기저기 단풍이 살짝 들었더군요.^^

 

 

 

 

동궁을 보면 양쪽 방을 어떻게 쓰였을지 짐작할 수 있도록 잘 꾸며 두었더군요. 그래서 한국사를 다른 다큐를 보거나 공부할 때 실제로 보는 것이 아니다보니 장님 코끼리 만지듯 보고 듣기만해서 어려웠던 구조는 이제 까막눈인 것은 어느 정도 벗은 듯해요.

동궁 담장을 넘으면 동궁 일원이 나와요.

10월 말이라서 그런지 은행잎이 이쁘게 물들었고 여기저기 단풍이 살짝 들었더군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표정이 많이 편안해 보이네요.^^

 

 

 

우리나라 궁 중에 무척 크기도 하고 알려진 곳이다 보니 중간중간 와서 사진찍는 외국인​들도 눈에 많이 띄네요.^^

 

 

궁 옆에 박물관이 있는 것도 이색적인데 박물관 같은 곳은 어지간하면 꼭 가보잔 주의라서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이 때만 해도 ​민폐 중화권 외국인 관람객들에 힘들어 할 거란 걸 전혀 예상 못 했으니까요...!^^;;;

 

 

 

들어가는 길에 12지신상이 있네요.^&^

민속박물관이란 이름답게 우리나라 민속 문화에 관련된 것들​이 잘 전시되어 있어요

각 시대별 생활 양식이나 사회문화를 얼추 짐작 할 수 있으니까요...^^

 

 

 

 

 

 

전 또래들 보다 부모님의 연세가 많으시다보니 옛날 이야기하시면 언제적 일인가...?싶을 정도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야기였었는데 한번씩 어른들이 옛이야기하실 때 듣던 남포등을 보니까 진짜 반갑더라구요.^^

 

 

 

 

 

 

 

 

 

 

 

TV에서 종갓집 종부되시는 요리 연구가 분이 김치 담그실 때 사용하시는 것을 봤는데 이 학독을 어떻게 쓰는지 아는 사람은 많이 없다는...!^^;;

 

 

옛날 돌잡이​에 쓰이던 건데 요즘도 요거로 했으면 좋겠다는...! 괜히 이것저것 욕심대로 올리는 것 같으이...!ㅜㅜ

 

 

 

 

"함사세요~!!​"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옛 의학 도구들이죠. 한의학이 다소 신비로운 면도 있고 나름 ​검증하기 어려운 만큼 비과학적이라고 욕할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서양의학에 천대받고 무시받을 만큼 덜떠러지고 미신적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아요.

당시에는 약으로 쓰였던 약재들 중엔 과학적인 검증으로 더이상 약으로 쓰이지 않고 한방에서 쓰는 약재들이 배제되어 전혀 쓰이지 않고 자연에서 나온 천연인데다 양방의학에서 쓰인 약 중에도 그런 한방적인 천연재료를 첨가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렇게 서로 상생하고 협력하면 더한 시너지를 내어 현대 의학 특히 한국에서는 더한 의학/의료발전하는데 그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는 저인데 양방의학에서는 왜 그렇게 한방의학, 한의학을 싸고 부수려드는지 모르겠어요...!^^

 

 

 

 

 

환갑연이었나? 어른 회갑같은 생신상을 재연해둔 거네요.^^

저희 부모님은 못 해드려서 죄송하고 그랬는데 다시금 보니까 삼남매가 자체 늦둥이였던 터라 제대로 해드리지 못 했던 것에 죄송함이...!^^;;

 

아우~, 근데...! 국립 민속 박물관에서 만난 중화국가에서 온 듯한 외국인 관광객들 여기쯤 관람하면서 누적되었던 것들로 인해 진짜 그 사람들 싹~ 쓸어다 엮어서 한강에 빠트리고 왔음 좋겠다 싶을 만큼 비매너들이더군요.

너무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좀 심한 말이 있지만, 옛날 옛적 우리 나라 사람들이 외국에 갔을 때나 한국에 외국인들이 놀러를 오던지 하면 시끄럽다느니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느니, 기본 질서를 지키지 않느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듣던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어도 부족할 만큼 어찌나 무질서하고 시끄럽고 비매너인지...!

나중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부모님께 중국에서 온 듯한 외국인 관광객들 왜 그렇게 시끄럽고 안하무인에 무질서하냐고 있는대로 욕했던 것 같네요...!^^;; 특정나라를 지정하여 편견을 갖고 욕하는 것이 좀 그렇지만 그들의 못 난 모습이 외국에 나갔을 때도 같은 모습이라면 그 나라 그 민족의 사람들을 욕하게 되고 눈총받게 되는 걸 그들도 알고 있을까요? 일행이 아닌 다른 관광객들의 짜증섞인 눈치와 박물관에 배치된 직원들의 그렇게 하지 말라는 제스처로 눈치줘도 잠시 뿐이고...!ㅡ.ㅡ^

상당히 불편하고 불쾌하고 짜증이 좀 돋았네요.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그만큼 국민성도 따라 발전한 것은 아니라서요.

혹여 다시 외국으로 나갈 일이 있다면 최대한 다른 나라, 다른 문화 속에 있던 사람들이 인상찌푸릴 정도로 민폐끼치는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그들을 통해 하게 되네요.

 

 

 

 

 

제가 갔던 날 장고 개방이 있던 시기더라구요.^^

장고가 장을 담근 독들 보관한 창고라고 하더라구요.^^

누가 궁궐 속 장고가 아니랄까 봐 진짜 넓더라구요.^^

 

 

 

 

예전같지 않은 다리에 급격히 불어났던 체중으로 다리가 힘든 감이 없지 않았는데 앉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카메라에 다 담지 못 했어도 돌아 보는 중 향원정까지 오니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왜...! 하필이면...!! 숙소에서 가지고 가야지 하고 챙겨 놓고도 깜박 잊고 우산을 안들고 온 내 탓이오...!!ㅜㅜ

계속 비맞으면서 돌아다닐 건지 아님 그냥 돌아갈 것인지 결정해야하는데 그냥 돌아가기는 아쉬운데 다시 올 수 도 없어서 그냥 비 맞기로 했네요. 여기서 우산 살 곳도 없었던 탓도 있구요^^;; (다행히 호스텔에 문의하니 옷을 빨고 건조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는데 대신 비맞은 여파는 톡톡히 치뤘네요.ㅜㅜ 으슬으슬 에이취~!!)

 

 

 

 

 

비내리는 향원정. 비가 와서 더 운치 있어 보이네요...^^

 

 

 

 

 

 

 

 

 

 

 

 

 

 

 

 

 

경희루 역시 편안한 분위에 비로 인해서 더 운치가 있는 것 같아요.

이날은 경복궁에 들리고 나서 저녁 시간 괜찮다면 삼청동거리와 북촌 한옥 마을도 함깨 가보고 로스팅 카페도 가보고 싶었는데 비 땜에 우산이 없어서 경복궁도 제대로 보지도 못 하고 후다닥 나와서 젖은 상태로 우산을 사도 감기 걸릴 가능성이 크고 다리가 후덜거려서 힘들 것 같아 결국 지하철 타고 숙소로 들어왔네요.^^

오는 길에 저녁식사를 사서는 빨래 돌리는 시간에 맛나게 먹었네요.

이날은 다리 다친 곳이 뻐근했지만 그래도 안 아까운 날이었어요. 뭐 비온 것과 삼청동 및 한옥 마을을 못 가본 것이 아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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