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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 여자의 방랑기/걸어서 세계 속으로 1

2014. 4. 20. ~ 4. 22. 경주 여행

by Esther♡ 2019.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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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29.에 작성한 여행기입니다.

 

 

 

2014년 어느 봄날, 작은 공동체 안에서 이뤄진 무배려와 무관심, 극한의 몰림으로 오는 스트레스로 쌓이고 쌓여서 결국 빵~~~!!!!하고 터져서 세월호로 국가적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침울하고 안좋은 시국인데도 불구하고 바로 짐싸고 경주로 향하고 말았네요...ㅜㅜ

 

 

흔들리는 차에 몸을 싣고 달린 끝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 YOU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제일 가까운 계림과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경주 황남동 효자 손시양 정려비( 보물68호)가 있었어요. 고려시대 세워진 것인데 정려비는 충신이나 효자, 열녀들이 살던 고을에 기념하여 세워주는 것인데 손시양이란 사람이 양친이 돌아가실 때마다 3년씩 초막을 지어 살며 묘소를 지키고 효성을 다했다하여 세웠다고 하네요.

이만큼 다른 시, 도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경주는 발이 닿는 곳마다, 눈이 가는 곳마다 역사관련 설화나 비석이 많고  유적지고 사적지일 만큼 도시자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어요.^^

드디어​ 대릉원에 도착했습니다.^^

​입장료 2천원을 내고 들어갔습니다.^^

 

길고 긴 산책하기 좋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는데 어릴 때 엄마 손 잡고 조상님들이 묻힌 곳이라고 대릉원 여기 저기를 신기하다며 ​쫓아다녔던 기억이 있네요. 그렇게 자주 와서인지 이후에 학교 수학여행이었나?해서 단체 관람 왔을 때는 별 감흥이 없고 덤덤했다는...!^^;;

 

 

당시 시국이야 어떻든 그래도 오래간만에 집 밖에 나온 것도 신선하지만, 생애 첨 단체나 가족끼리가 아닌 혼자서 여행이란 이름 아래 나왔다고 한참 들떴네요^^;;

 

 

당시 시국이야 어떻든 그래도 오래간만에 집 밖에 나온 것도 신선하지만, 생애 첨 단체나 가족끼리가 아닌 혼자서 여행이란 이름 아래 나왔다고 한참 들떴네요^^;;

 

 

드뎌 대릉원의 첫 방문지인 미추왕릉 이에요.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저렇게 담을 치고 문을 세워 단단히 자물쇠를 채워뒀지만 그래도 신라가 아직 사로국인 시절 박, 석, 김씨 돌아가면서 왕이 될 시기에 경주 김씨 시조인 김알지가 석씨 성을 가진 탈해 이사금 시절에 세자로 책봉되지만 파사 이사금에게 왕자릴 양보한 뒤 김씨 가문 사람들 중에 처음으로 왕이 된 미추이사금이지요.

 

백성들을 사랑하지 않는 왕들이 얼마나 있었게냐마는 미추왕은 신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것이 크다는 것을 말해주는 설화가 많아요.

 

대표적인 것이 죽엽군 설화와 김유신 장군관련된 일이에요.


23년 재임이 끝나고 미추왕을 이어 왕이 된 제14대 유례왕(儒禮王) 때 이서국(伊西國)이 쳐들어 왔는데 당시 사로국이 힘이 부쳐서 밀릴 때 갑자기 돌풍이 불면서 귀에 대나무 잎을 꽂은 군사들이 나타나 적을 물리쳤다. 싸움이 끝난 뒤 갑자기 사라져서 그 군사들이 어디서 온 누군인지 몰라서 사람들이 의아해 하던 중 미추왕릉 앞을 보니 댓잎이 잔뜩 쌓여 있었다고 해요. 이를 보고 사람들은 그제서야 선왕(先王)이 음으로 도왔음을 깨닫고 그뒤로는 미추왕릉을 죽현릉(竹現陵)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해요.

 

이후 통일 신라시대 제37대 혜공왕(惠恭王) 때는 김유신 장군의 무덤에서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며 생전의 모습인 김유신 장군이 나타나서는 준마를 타고 무장을 한 40명의 혼령을 끌고는 죽현릉 쪽으로 가더니, 통곡소리와 함께  살아서도 죽어서도 신라를 지키기 위해 애써 왔는데 그런 자신의 후손이 죄없이 죽었다며 이는 저의 공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신라를 떠나 다시는 나라를 위해 애쓰지 않겠으니 왕께서 허락하시면 떠나겠다고 세번이나 허락하길 청하였으나 미추왕이 "나와 공이 이 나라를 지키지 않으면, 저 백성들은 어떻게 하겠소. 공은 다시 그 전처럼 힘써주시오."하며  설득하고 다독이며 끝내 떠나는 걸 불허하자 김유신 장군의 혼령은 다시 회오리바람이 되어 무덤으로 돌아갔대요. 이 말을 들은 혜공왕은 덜컥 겁을 먹고 대신 김경신(金敬臣)을 김유신의 무덤에 보내 대신 사과하고 취선사(鷲仙寺)에 공덕보전(功德寶田)을 내려 김유신의 명복을 빌게 했지요. 그뒤로는 미추왕을 삼산(三山)과 함께 제사 지내고 미추왕릉의 서열을 오릉(五陵) 위에 두고 대묘(大墓)라 불렀다고 해요.

 

​뭐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이 되나 그렇게 나라를 사랑하시는 분이 한분이라도 조상이라고 계신다는 것이 감사하죠.^^

을사오적처럼 나라팔아먹고도 부끄러운줄 모르는 당당하고 뻔뻔한 조상도 있고 그들의 후손들도 있는데 부끄럽지 않은 조상 밑에서 부끄럽지 않는 후손이 되고픈...?^^;;

네~, 죄송해요. 너무 나갔네요~!^^;;

 

 

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돌봤고 백성을 먼저 생각하고 나이 많은 자들이나 어려운 자들을 먼저 돌보고 살피며 민생 전반을 돌보기도 하고 궁을 다시 짓자는 신하들의 청에도 백성들을 괴롭히는 일이라며 거절할 정도로 백성을 먼저 생각하고 백제든 어디든 쳐들어온 적들을 물리치시며 나라를 돌보던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닮았으면 하네요...!^^ 

 

 

 

 

 

대릉원엔 여러 무덤들이 있으면서 돌아볼 수 있도록 길이 잘 되어 있어요.

 

양쪽 무덤을 돌고 돌아서 부부총이라고 부르는 황남총을 지나 천마총 앞에 도착했을 때 이렇게 단체로 모여서 해설안내해주시는 분의 안내를 따라 다니는 무리(?)도 있더군요.^^

전 당시 단체로 욺직이는 것에 묘한 알레르기 반응이 나왔던 터라 개인으로 힐링 차원에서 왔기에 개인전이 좋아서 천마총에 들어갔었죠. 당시 내부 사진은 촬영 금지라 없어용~ㅠㅠ

 

 

 

 

 

근데 계림으로 갈려면 들어갔던 정문으로 바로 나와야지 바로 엎어지면 코닿을 곳일 만큼 가까운데 후문으로 나오는 바람에 삥~~~~!!! 둘러서 갔다는...!!ㅜㅜ

덕분에 많이 힘들었어요...ㅜㅜ

그래도 난생 첨으로 혼자 나돌아다니는 거라고 많이 신났네요.^^;;

 

 

 

계림으로 가야하는 데 후문으로 나오는 바람에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당황해서는 경주라면 눈감고도 다니실 정도로 빠삭하신 아버지께 사정을 말하고 여쭤보니 설명하시는데 저 방향 감각이 마비되서 내비가 망가진 제게  "정문으로 안나왔구나? 정문에서 나오면 있잖아~!^^ 내물왕이라고 니네 조상 무덤 있고 바로 그 옆에 있는데 못 찾았나?"하셨는데 "아부지~ 경주는 널린 게 무덤인데요?" 할 정도로 그 무덤이 이 무덤인지...! ^^;;

아시잖아요~. 경주는 고개만 돌리면 저런 봉분의 무덤이 흔하다는 거~!ㅜㅜ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좋아보이는 첨성대에도 당시 일요일이라서 그런지사람이 많았네요 예전엔 500원이었나? 입장료가 있었던 걸로 기억했는데 이때는 입장료가 폐지가 되어서 무료입장이어서 편안하게 둘러봤네요.

호리병 모양의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첨성대 앞에서 찰칵~! 여라번의 타이머를 맞춰서 그나마 건지 사진이네요ㅜㅜ

첨성대 근처에 경주 이씨 교감공파 관란종친회가 있는 문호사가 있더라구요.^^ 다소 생뚱맞다 싶어서 조금 의아하기도 했어요.^^

 

 

 

 

 

 

 

 

계림과 유채꽃밭을 지나고 나면 석빙고와 월성터로 향하게 되는데요, 사실 볼 게 없어요~.ㅜㅜ

석빙고 하나만 덩그렁이 있고 지나게 되면 월성터가 있는데 안내판이 없었으면 잘 몰랐을 거예요.

그래도 산책하듯 방문하기엔 좋아요.^^

 

어릴 때 여러번 경주에 왔었어도 그 잦은 방문 속에서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이 엄마 손 잡고 동생이랑 같이 집 근처 숲이나 공원에 산책하듯 계림도 오고 석빙고도 오고 월성도 오고 했던 기억이 있지만, 어릴 땐 어려서 힘들었다면, 지금은 사고 이후로 급격히 떨어진 체력과 약해진 다리로 인해 역시 힘들었네요.

월성터까지 지나서 나오면 길 건너편에 바로 안압지로 알려진 월지와 동궁터가 나오는데 월지와 동궁터는 야간개장이 되기에 관람시간이 한정되어있고 그 시간이 지나면 다음날 월요일이라서 관람이 안되다보니 경주 박물관부터 향했습니다.

 

 

 

 

날이 좋아서인지 몰라도 학생들도 있고, 나들이 오셨다가 관람하러 오신 어른들도 계시고 이렇게 귀여운 아기도 엄마와 함께 왔더군요^^

 

 

 

 

 

 

 

어릴 때 경주에 오면 거의 안빠지고 왔던 곳이 이 경주 박물관이었던 것 같아요. 중, 고등학생 때에 단체견학으로도 왔던 기억이 있을 정도로 집같이 익숙한 곳이지만 올 때마다 새롭고 신기하고 즐거운 곳이에요.

 

이날은 경주에 오자마자 안 쉬고 바로 무리해서 돌아다녀서인지 몸이 힘들고 발목에 남아 있던 고정물과 연골에 있던 염증을 제거하는 수술하고 퇴원한지 몇주안되었을 때라 무리했는지 부서질 듯 통증이 몰려와서 무사히 관람하는 것이 우선인지라 사진을 별로 남기지 못 했네요.^^

 

저는 저희 오빠나 여동생과 달리 정치적인 것이나 외교적인 것에 관심의 비중이 크지도 않고, 위인들을 파고 들거나 땅 파고 무덤뒤지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의.식.주와  장식구, 그릇 및 도자기, 사회/문화, 시나 소설 같은 문학 등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아서 그런 것을 많이 뒤지기는 하지만 때론 기초적인 수준에서 제 이름 석자를 쓸 수 있을 정도의 한자로 인해 서신/문학 부분에서 꽉!! 막혀서 한계가 있어서 많이 답답하고 미리 한자공부를 좀 잘 해둘 것을...!하는 아쉬움이 같이 있네요.

특히나 냉수리신라비같은 비석이나 박물관에 전시된 서책과 서신 등에 있는 내용을 알아볼 수 없는 것에 제 때 공부하지 않았던 제게 화가 좀 날 정도로...!^^;;

그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바로 안압지로 향했습니다.

오후 5시 반 정도 저녁이 되어가는 시간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밝아요.

입장료 내고 표받을 때 직원분이 '아직 어두어지려면 멀었는데 어두울 때 보는 것도 참 좋아요~​.^^"하시더라구요.

당장 어둡지 않다고 나중에 다시 오긴 번거롭고 좀 있으면 어두워질텐데 굳이 밖에서 기다릴 필요가 있나 싶어서 들어갑니다~^^ 

 

 

천천히 혼자 놀면서 기다리니 슬금슬금 어두움이 드려지면서 조명도 켜지고 낮과는 다른 분위기가 드리워지면서 아름답더군요. 그렇게 아예 삼각대까지 설치하고 어두워지고 조명이 켜지길 기다리​다가 사진찍기 좋을 때 바로 사진찍어대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저는 객지에 혼자있단 생각에 겁이 살짝나서 길을 잃을까봐 얼른얼른 돌긴했지만 낮에 왔을 때와 다른 분위기의 안압지도 가 볼 가치가 ​있다고 추천할 수 있어요. 마치 덕수궁이나 경복궁 같은 궁궐 야간 개장할 때 가볼 때 낮에 느낄 수 있는 것과 다른 것처럼....^^

그렇게 분위기에 취하고 또 다른 추억을 만들고는 나와서 저녁을 먹기 위해 당시에 부모님께서 종종 가시던 성동시장에 있는 식당에 가려고 하니 문닫을 시간이라서 여행오기 전 알아두었던 밀면 집을 찾는다고 헤매던 중에 더는 움직일 힘도 없고 몸 상태도 아니라서 결국 눈에 보이는 중화요리 집에 들어갔는데 잘 들어왔다 싶었어요.

 

남은 음식을 싸주는지 물어보고는 자장면과 함께 시킨 탕수육이 레몬이 들어가서 느끼하지도 않고 상큼하니 맛있었어요.

허기져서 더 맛있었는지도 모르죠.^^

지치고 배고픔에 종업원들의 눈치를 본의 아니게 보는 바람에 사진을 못 찍었지만 최고였네요.^^  

 

이렇게 첫날은 저물어 가네요.

​많이 즐겁고 재미있었던 것 만큼 힘들고 지쳤어요. 이날 푹 잘 잤던 것 같아요.^^

둘째날은 불국사와 석굴암을 다녀왔어요.

입장료가 불국사와 석굴암 각각 40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네요.​^^

 

 

 

 

 

 

이 길을 쭉~ 걸어가면 이렇게 자하문과 계단이 보이죠~.​ 옛날엔 저 계단을 올라갈 수 있었으나 보존과 보호차원에서 저렇게 난간을 치고 못 들어가게 해두었죠.

뭐 예전에 한창 공부할 때에 청운교, 백운교 밑에 물이 흘렀고 그런 수로시설도 되어 있었다고 듣기도 했는데 방문 당시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난다...!^^;;;

 

 

 

 

 

 

 

 

석가탑은 균열이 발견되어 수리(?)를 하여야되서 저렇게 해체를 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마무리가 다 되어갈련지...!

방문 당시 어릴 때 봤던 기억 속 석가탑을 경주박물관에 있는 모조품이 아닌 진품을 볼 수 있단 기대에 설레었는데 저렇게 해체 보수 중인 석가탑을 보니 많이 아쉬웠다...!ㅡ.ㅜ

대신 다행히 나름 보전이 되고 있는 다보탑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 밖에...!

 

이날 돌아보면서 불국사가 워낙 오래된 사찰이자 건물이고 탑이여서 그런지 몰라도 석가탑만이 아니라 대웅전 쇠기둥으로 받쳐두어서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삼각안내표지판이 있었고, 무설전 뒤에 있는 비로전과 관음전도 오래되어 무너지거나 다칠 수 있는 가능성에 그물망이 쳐져 있고 역시 쇠기둥으로 받쳐져 있으면서 못 들어가게 되어 있어서 아쉽게 들어가 볼 수 없었다.

어릴 적 불국사 구석구석 다 들어가 봤던 것 같은데...! 역시 세월이 많이 흘렀나 봐...!^^;;

 

 

 

 

 

 

 

 

 

이 금돼지가 복을 가져다 준다는 안내문 때문인지 만져보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외국인들도 많았고 다 보고나서 지하문 앞 나무 그늘 에 잠시 앉아 있을 때 덩치 큰 카메라를 만지고 있는 내게 대만에서 왔다는 관광객이  지하문과 청운교, 백운교를 배경으로 사진 찍어달라는 말을 간단하고 짧은 영어와 손짓, 발짓으로 부탁하고 나도 한자 공부를 소원했던 것 만큼 대학 졸업하고선 바로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 좌절되는 통에 낙심하고 바로 영어를 손 놔버린 것을 후회하면서 손짓 발짓해가며 겨우 겨우 찍어줬는데 아직도 똑딱이로 나름 괜찮게 찍어줄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못 해서 아직도 땅을 칠 정도로 아쉬움이 크다.

불국사에서 나와서 석굴암으로 가려면 차로 이동하여야 해서 버스를 기다렸다가 불국사로 향했고 결국 고정물 및 염증제거한지 얼마 안된 왼쪽 발목을 포함해서 사고로 다쳤던 두 다리의 통증으로 부모님께 등산스틱을 빌려오지 못 했던 것을 후회하면서 쉬엄쉬엄 올라가서 내려오고는 "아이구 살 좀 빼야겠구먼...!"하는 노점하시는 어르신들의 말을 뒤전으로 흘리고 불국사에서 아래쪽에 있는 주차장에서 시내 쪽으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다가 때를 놓친 점심을 또래 어머님, 아버님 같은 어르신들께서 하시는 식당에서 그닥 맛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래도 친절하고 편안하게 먹고 한숨 돌리곤 나왔다.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까지 절뚝거리며 걷는 것을 보고 할머니께서 걷는 게 다리가 불편해 보인다고 하셔서 민망함에 사고로 다릴 좀 다쳤다고 무리해서 좀 걸어다녀서인지 다리가 좀 힘들다고 하고선 말았네요.^^;;;

 

이날은 무리했다는 생각에 테디베어박물관에 가고 싶어서 계획하던 것을 철회하고선 바로 숙소에 들어가서 쉬는데 들이닥친 중국인 같은 단체 관광객들 땜에 엄청 당황했어요.

그래서 게스트 하우스 관계자분에게 전화하고 안되는 영어해가며 손짓발짓 하는 듯 마는 듯 했지만, 다행히 그들이 유창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한국어 회화가 가능해서 소통하는데 제가 묵었던 곳이 아닌 5분 정도 떨어져 있던 다른 게스트 하우스였고, 때마침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확인했던 터러 설명하는 것도 한계가 있기도 하고 그들이나 나나 경주에는 이방인이기에 직접 안내해주기로 하고 어딘지 알겠으니 따라오라고 해서 바래다 주고는 뿌듯~!^^


일찍 자고 싶었는데 양쪽 다리의 심한 통증과 세월호 땜에 깊이 잠들기 힘들었고,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게스트 하우스 의 바깥사장님 덕분에 마지막날 경주 최씨 고택과 향교를 방문했네요^^

 

 

 

 

 

 

 

 

 

나른한 봄 날씨에 얼룩이 고양이도 느긋하게 나들이 나왔네요​

편안하고 평온한 집이에요. 경주 최씨 부자가 얼마나 부자이면서도 검소하고 겸손하게 살아왔는지 알 것 같아요...​!

 

 

최씨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육훈』인데 음각으로 새겨진 글자 안에 칠해진 것이 지워져서 잘 보이질 않지만 그 가르치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덕망이 되는지 알 수 있고 좋은 가르침이 되어요.

 

 

 

 

 

 

 

 

 

아까 봤던 그 고양이가 사람을 무서워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유유자적 제 집인 양 잘 다니고 그러네요.^^

 

 

 

 

 

 

 

 

 

 

사람이 살지 않는 고택이 아닌 거주하고 있는 고택이라서 개방이 한정되었지만 그래도 얼마나 큰 집이고 부호였는지 가늠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근처에 옛 최씨 고택이었던 곳 일부 중에 나그네나 객인들을 보호하고 대접했던 건물을 이용하여 <요석정>이란 식당을 하고 있는데 1년여 뒤에 어버이날을 맞아서였나 엄마 생신이여서인가 동생내외가 저까지 초대해서 가봤더랬죠.

하지만 음식이 최씨 집안 대대로 내려왔던거라 생각하기엔 너무 장사속이 보이는 면이 없지 않네요....^^

한번 가봤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른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혼자 방문했던 날 최씨 고택에서 나오면서 좀 비싸고 양은 좀 아쉽지만, 부모님께 드릴 대대로 내려오는 방식대로 빚은 교동 법주를 한병 사들고 나왔네요. 

 

자 다음은 경주 향교~ ​!

 

 

 

 

 

 

 

 

 

 

 

 

 

이날은 사람도 없고 행사나 체험이 없어서 무척 조용하고 조용해서 이렇게 왔다갔다 돌아다니면서 설치는 것이 죄송스러울 정도로 조용했어요^^;;

그동안 사용하였던 미니홈피를 정리하고 네이버 블로그로 이사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었고, 다시 티스토리에도 포스팅 이사를 하는 것도 역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네요. 에너지도 많이 소비되기도 하구요.^^

 

아직 옮겨오거나 할 이야기들이 많네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함께 가야할 것 같아 힘들지만, 이제 익숙해져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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