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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 여자의 방랑기/걸어서 세계 속으로 1

2019. 10. 17. 강릉 선교장

by Esther♡ 2019.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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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도 그렇고 출사하기 원하는 딸래미 땜에 강원도로 가족여행을 떠나신 부모님.

가고 싶은 곳 좌표를 찍어 내라!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에 좌표를 찍었는데 유독 시간잡아 먹을 일이 없는 여기서 시간을 많이 잡아 먹었다.^^;;;

선교장은 99칸의 번창하는사대부가의 주거형식을 갖추고 있어요.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이 11대손인 가선대부(嘉善大夫) 무경(茂卿) 이내번(李乃蕃)에 의해 처음 지어지고 10대에 걸쳐 지금까지 증축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는데 하늘이 족제비 무리를 통해 점지했다는 명당터로 이 지방의 명망있는 집안으로 남쪽에 경주 최부자와 견주는 만석꾼에 나그네를 대접하고 흉년에 곳간을 열어 이웃에게 나누며 베푸는 집안의 표상으로 자리 매김하는 듯 하는데...! 이 가문의 후손인 이근우란 사람이 친일파로 중추원에 들어가서 활동했던 사람이 있어서 이 곳이 친일파의 집으로 그래서 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에 대한 엄청난 거부감과 비판이 있는 바인데 처음부터 친일은 아니고 독립을 위해 일하다가 변절한 인물로, 그의 아들이 아비가 하는 친일에 반대 급부로 독립을 위해 일했다는 말이 나와있어요. 그래서 전 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요.

 

 

 

 

여느 고택들처럼 숙박을 할 수 있게 되어 있구나...! 근데 가격을 본 나는 왜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

 

 

 

들어오면 바로 오른쪽으로 활애정이 있어요. 연잎이 가득한 연못과 함께 있는데 진짜 신경 많이 쓴 것이 보여요. 여름에 오면 푸른 녹음도 그렇지만, 활애정의 연못에 연꽃이 만발할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상상만으로도 좋으네요.^^

 

 

 

 

 

 

창문이나 문을 통해 보는 풍경도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액자가 되고 그림이 됩니다. 이게 한국의 건축과 서양의 건축의 차이이지요. 인의적인 조경이나 풍경이 아닌 튀지 않는 건축으로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속에 어울려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건 우리 조상들의 정서가 잘 반영된 것이겠지요.

 

 

 

한국의 많고 많은 고택들이 대부분 아직 사람들이 거주하는데요, 선교장도 역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에요. 그러니 그만큼 배려하고 무례하지 않게 관람해야겠죠.^^ 그 분들이 기거하시는 곳은 많은 전각 중에 외별당에 기거하시는 것이니 무례하게 들어가지 않도록 해주세요.^^

 

 

 

솟을 대문을 지나 동별당으로 왔어요.

강원도 및 강릉이 함경도나 양강도 만큼 추우면서도 경상도나 전라도처럼 햇볕이 없고 온기가 없는 지역이 아니기도 하고 그 중간 지역이다 보니 남쪽과 북쪽의 주거양식이 좀 섞였는데 와서 보는 사람들 중에 방이 작다는 사람도 있는데 대체 사대부의 집이라고 해서 얼마나 크길 바라는 건지...?^^;;;

고궁에 가도 임금님 방이라고 하나 큰 행사를 치르는 경복궁의 근정각이나 창덕궁의 규장각처럼 일하는 곳 아니면 많이 큰 것도 아니고 경복궁에 있는 세자 내외가 살던 동궁도 사료에 기초해서 재현했겠지만, 그곳을 봐도 방이 진짜 작다...!^^;;; 그때 창문과 문을 열어두어서 볼 수 있었지만 진짜 1칸짜리 방이라할 정도로 작아보였음...!^^;;;

지금 기억하는 이 곳 문화해설사 분의 말을 잠시 빌리자면 북방계 주거와 남방계 주거가 섞였다고 해요. 그래서 주생활하는 방 옆에 작은 공간이 있어서 추위에서 견딜 수 있고 그 공간도 활용하기도 하고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오은고댁(택)

가재가 숨어있는 집?? 무슨 뜻인지...!^^;;;

워낙 글자가 알아보기 힘들어서 거의 스마트 폰에 깔아둔 사전에 거의 그리다시피 써서 검색해봤네요...!

한의사인 오빠나 국어 교육 전공한 동생만큼은 아니여도 어지간해서는 웬만한 한자들을 알아보는 편인데 영...!^^;;;

 

 

 

안가 주옥이에요. 동별당과 별다른 대문없이 이어져 있는데 정말 여자들만의 공간이란 느낌이었어요.^^

솥을 건 부뚜막이 두 군데 있었는데 왼쪽에 건물 사이에 있는 곳은 부엌이라는 건 알겠는데 맨 오른쪽 가린곳은 허겁지겁 따라가서 들은 거라 거긴 사당이라는 말만 기억하네요.^^

 

 

자연스런 나무결이 정말 좋네요.^^ 

 

 

 

 

 

 

 

 

 

서별당과 연지당인데 아이들이 생활하고 교육받는 공간이자 맞며느리에게 살림 넘겨주고 은퇴하신 왕(?)마님이 기거하시면서 아이들을 돌보는 곳이기도 했네요.

 

 

 

 

 

아이들을 너무 부유한 것만 보고 자라면 담장 밖의 세상을 모르고 너무 순진 내지는 서민의 삶을 모르고 지난다고 서민체험(?)을 하며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생활을 경험하고 교육시키기 위한 장소에요.

 

 

큰 사랑채인 열화당이에요. 선교장 종손의 거처였으며 평소 남자 주인이 친척이나 친지들이  수시로 모여서  정담을 나누며  우의를 다지던  사랑방 같은 곳이었어요. 중간에 기둥이랑 서까래, 기와가 본 건물과 달라서 물어보니 앞에 있는 것은  테라스로 차양이라면서 한말에 러시아 공사가 왔다가 대접받은 것이 고마워서 나갈 때 햇볕에 인상을 찡그리게 되어서 대접받은 것이 고마우니까 러시아공사가  기증한 것이라고 했어요.

 

 

 

중사랑채로 맏아들, 종손인 큰 주인 말고 아들 중 맏아들의 거처로 쓰인 곳이라고 해요.^^

작지만 열화당과 함께 남자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하죠.^^ 

 

 

행랑채가 일(一)자로 되어 있어요. 객(客)들이 와서 묵어가기도 하고 집 안 물건들을 보관해두고 물건을 만들고 하던 방이기도 해요.^^

 

 

곡식창고인데 이 곳에서 대대로 쓰던 생활물건들을 전시해두었더라구요. 보는 재미도 있어요.^^

 

 

 

 

 

 

 

 

 

 

 

강원도에서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단풍을 여기서 다 봐요.^^

10월 16일, 17일 쯤엔 강원도 및 설악산 쪽에 단풍 절정이라더니 갔더니 여기랑 설악산 울산바위 근처에 지역에만 보고 말았네요.

제가 갔을 때 그제서야 막 시작하고 있더라구요. 이제는 좀 단풍이 물들었을까요...?^^

 

 

 

 

 

 

 

 

 

 

이 곳에 살았던 종손들 중에 이근우라는 사람이 있는데 일제시대에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참사로 지내고 이후로 각종 고위 공무원(?)으로 지냈으며 지금 친일 인물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친일은 독립운동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척결을 해도 시원하지 않죠...!

하지만 한 집안에 명목상 자신이 독립운동하는 것을 들키지 않고자 앞에선 굽신거리면서 손 비비고 뒤에서 독립자금을 보내거나 지원하거나 형제나 자녀가 그러는 걸 자신이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보호하고 덜 시달리도록 명목상 그러는 경우도 없는 것이 아니라서 조심스러운 것이 없지 않고 이근우는 지금은 친일로 친일 인물 명단에 이름이 올라간 사람이지만 처음부터 친일이 아니라 독립을 위해 일하다가 전향했다는 말이 있고 아까 말했듯이 그렇게 명목상 친일이지만 뒤에선 독립을 후원하고 지원했다는 말도 있고 이근우가 독립에서 친일로 전향하고는 그의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가 전향하여 친일한 것에 반대극부로 독립운동을 했다는 말이 있었으니까...! 일단 조심스러운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친일파의 집이라고 해서 손가락질하고 외면하는 것보단 그 시대의 주거 양식을 보존하고 볼 수 있는 것으로 넘어가렵니다

 

 

 

☆ 개인적인 방문기입니다.

여러분의 공감과 댓글은

곰팅이 같아도 감수성 풍부하고 여린 제게 아주 큰 힘이 됩니다.

가시기 전에 꼭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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