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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명 - 창가의 토토, 그 후 이야기

○ 저자명 - 구로야나기 테츠코 (黑柳徹子)

○ 장르 - 소설, 동화

○ 줄거리

그래서 우리의 토토는 어떻게 되었을까?”

두려웠지만 희망으로 가득했고, 막막했지만

꿈을 잃지 않았던 토토의 그 후 이야기

전 세계 2,500만 독자를 감동시킨 글로벌 베스트셀러 창가의 토토42년 만에 후속작 창가의 토토, 그 후 이야기로 돌아왔다. 출간 즉시 일본 아마존 종합 1위를 기록하며 두 달 만에 50만 부 판매를 돌파한 이 책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통해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성장은 계속된다는 사실과 희망을 몸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거대한 변화 속에서도 우리는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가?’ 질문을 던진다. 한 소녀가 전쟁과 시대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 남과 다름 속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길을 발견했는지, 그 과정에서 개성과 신념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누고자 한 것이다. 세대를 초월한 감동과 메시지를 전하는 또 하나의 걸작이다.

 

<출처 - 교보문고 책소개>

○ 사견/감상문

 

대학졸업을 앞두고 전공인 사회복지학과 관련된 자격증 말고도 학교 커리큘럼 덕에 보육교사도 딸 수 있을 정도로 해당 점수를 다 채워뒀었고 4학년 여름 방학 때 실습까지 마치고 나서 부족한 학점 몇점만 더 채우기 위해 듣던 수업 중 특수아동 관련 수업에 과제로 내야했던 책이 바로 일본 유명 방송인이자 원로배우인 구로야나기 테츠코 (黑柳徹子)의 [창가의 토토] 였어요.

그때도 그 책을 보면서 이런 학교에서 이런 교장선생님의 교육이념 속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부러움과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 후의 이야기도 너무나도 궁금했었지요.

 

당시 도모에 학원을 다닐 쯤 한반도는 일제치하였고 전쟁까지 벌이다보니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전쟁으로 그나마 먹고 살기 좋았던 상황이 그마저도 안되게끔 되어갔었고 토토의 아버지이신 구로야나기 씨도 반전 주의자이시기도 해서 군사 사기 향상을 위해 바이올린으로 군가 연주해달라는 제의에 아이들 생각에 수고비인 식량에 잠시 혹하기도 했지만 거절할 정도로 전쟁에 반대하면서도 직장인 NHK 교향악단에서 동료들이 하나 둘 착출되어가는 것을 보고 착찹하고 자신도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에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것을 보여지기도 했어요.

 

결국 태평양 전쟁 격화로 치달으면서 도쿄공습으로 학교가 소실되고 아이들이 피난가면서 아버지 구로야나니기씨는 결국 징병되어 끌려가자 토토의 가족도 아오모리 현으로 피난을 가게 되고 어머니께서 아이들을 먹여살리기도 하고 나중에 도쿄 공습으로 살던 집이 소실되었다는 걸 알고 다녀오신 이후 그 집을 그 터에서 다시 짓기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돈을 모으셨지요. 그리고 어머님 구로야나기 초는 자퇴하긴 해도 나중에 토토가 졸업한 동양음악학원에서 공부하시다가 그만두셨지만 음악공부하시기도 하셨으면서도 글쓰는 재능도 있으시지만, 장사수완도 좋아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셨어요.

덕분에 종전 이후에 도쿄에 살던 집 터에 공습으로 타버린 집과 가장 비슷하게 집을 지어 올렸죠.

어머니는 그렇게 전쟁으로 무너진 가정을 재건하기 위해 애쓰고, 토토는 학교가 폭격에 무너져서 근처 절에 있는 건물 하나 빌려서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영국식 미션스쿨 코란 여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엄마의 친구 집에서 하숙하게 되었죠. 그때도 참 독특하고 개성적인 모습은 여전했어요.

 

그렇게 가족 모두 악착같이 아버지이자 남편인 구로야나기 모리츠나를 기다리는데 그는 종전되면서 시베리아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아서 있단 소식이 전해지고 몇년 뒤에 입국한 아버지가 토토를 보고 마지막에 봤을 때보다 부쩍 자라고 성장한 토토를 보고 너무나 반가워하는 아버지로서의 모습이었어요

 

그렇게 돌아오신 아버지는 포로수용소에서의 생활습관들이 나와서 가족들과 집안 일 봐주시는 분이 놀랐지만, 2, 3일 정도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는 어머니의 말처럼 1주일도 안되서 원래대로 돌아와 집안일엔 손을 대지 않으셨다고 해요. 그리고 도쿄 교향악단에 콘서트마스터로 영입되면서 바이올리니스트로 복귀하시지요. 나중에 시베리아에서의 생활을 물으면 입을 꾸욱 다물으셨는데 거기서는 노동을 했는데 나중에 수용서 관계자들이 악기를 다루고 음악을 할 줄 안다는 걸 알고 포로들을 위한 연주들을 해달라는 요구에 사람들을 모아 연주를 했다고 하죠. 그걸 지켜보던 소장이 일본에서보다 생활하기 좋을테니 남아주길 부탁했지만 아버진 일본에 있는 가족 생각에 거부하고 가족들 곁으로 가는 것을 선택하셨다고 해요.

 

토토는 코란여학교를 졸업하고 엄마의 모교이기도 했던 동양음악학원의 성악과로 진학했어요. 어릴 때 피난지에서 봤던 유랑공연 중인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공연을 봤던 기억에 그 극단에서 나온 관계자들이 집으로 찾아와 배우로 잘 카우겠다며 자신을 데리고 가려고 히던 기억이 강렬하였는지 졸업을 앞둔 학기에도 모두 진로를 찾아갈 때 자신은 정해진 것이 없으니까 침울하다가 NHK 방송극단에 입사하였다.

아이에게 책을 잘 읽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토토다운 말을 하였고 방송극단에 최종 합격해서 나중에 교육 및 최종 입사 과정을 진행했던 분들 중에 한분이 토토를 보고 본인도 의문인 채용 비하인드를 이야기하시는데 채용심사위원 중에서 토토는 여기와 안어울린다고 채용반대한 사람도 한명 있었지만, 말해주시는 본인이 토토는 흰종이 같은 사람이라고 무슨 역이던 잘 할 거라고 적극 추천했다면서 습자지처럼 쭉 빨아들여서 그 에너지를 잘 발산해달라고 했었어요. 그 말을 들은 토토는 무언가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후에 토토의 개성이 너무나도 강하니까 제대로 활동도 못 하고 그나마 당시 받는 돈이 얼마 안되니 감독이 토토가 와서 하려는 것을 달아놓겠다고 하고는 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의기소침했었고 그 와중에 NHK 라디오 드라마 ⌈얀보, 닌보, 톰보⌋에서 막내 톰보 역을 맡게 되요. 하도 안어울린다, 이거는 문제고, 저건 안되고 하는 소릴 듣고 활동도 거시기하니까 의기소침해서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더욱 쪼그라들고 작아진 모습으로 그동안 문제라고 들었던 것들을 고치겠다고 어울리는 배우가 되겠으니 자신을 돌려보내지 말아달라고 말하자 제작자 그룹에서 왜 고치냐고 이 역에는 토토가 제격이기에 결정한거라고 말하니 그것만으로도 토토에게 기쁜 일은 없죠. 인정받은 거니까요.

 

이후로는 성장하면서 잘 자리 잡아갔었고 희망사항이었던 아이에게 책을 잘 읽어주는 엄마가 되기 위해 결혼하려고 하였으나 누구나 가능했지만 아무나 만날 수 없었기에 인연을 만나기 힘들었고 뇌관련 전문의인 의사와 혼담이 오갔을 때 거의 결정되다시피 했는지 어머님께서 언제 또 자신이 해주겠냐며 옷을 몇벌해주셨는데 나중에 결혼이 엎어지고면서 결혼이 없는 일이 되어버리자 토토를 볼 때마다 어머님께서 결혼 사기꾼이라고 하셨다는데 왜 울 부모님이 생각이 나는지…!^^;;

그러게 아버지, 어머니~, 그때 왜 나에게 그러셨어요~? ㅜㅜ

 

그렇게 연기를 하고 배우로서, 사회자로서 15년동안 활동해가면서 연기에 대한 목 마름과 휴식을 원하여서 미국으로 1년의 연기 유학을 다녀왔어요. 유학을 가는 것으로 이 속편은 마무리되지만 창가의 토토 이후의 삶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했던 것이 정말 토토의 색채가 묻어나는 문체로 따뜻하고 밝게 담겨있었어요.

 

많이 행복하고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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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생일~!
누구 생일? 나요!^^
전엔 부모님이라도 계셨지만, 올해는 진짜 혼자다.
이런 와중에 뭐라도 무의미한 생일이고 싶지는 않아서 며칠 전부터 부모님이 보고 싶길래 부모님보러 갈 겸 사부작 사부작 준비해서 생일날 첫끼를 부족하지 않게 차렸다.
혼자 가기는 싫어서 전날 동생에게 콕 찔렀더니 마침 쉬는 날인 제부도 고맙구로 함께 나와주기로 했다.
아침 먹고 열심히 챙겨서 동생내외 오자마자 바로 갈 수 있도록 준비를 다 해뒀다.
 

 
그동안 생일이여도 옆에 짝궁만 없을 뿐이지 혼자는 아니였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혼자 맞는 생일이라 그걸 견디기 너무 힘들었는데 이렇게라도 부모님 만나러 오고 동생 내외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어찌 된 것이 우리 가족은 나를 필두로 막내 이질, 내 동생, 첫이질 순으로 3월에 생일이 몰려있어서 처음엔 내 생일날 나도 나지만 부모님 보고 올려고 산 작은 케익은 애들 가져다 주라고 동생에게 줬다. 동생내외랑 있을 때 큰 이질이 무슨 일인지 푹 꺼진 목소리로 막둥이에게 전화했길래 뭔일인가 했는데 나중에 집에 갔을 때 동생에게 애는 어떤지 물으니 그냥 반장 선거에서 떨어져서 그렇단다.^^;;;
벌써 사회의 쓴맛을 맛보고는 그런거였어?^^; 귀여웡~!^^
 

 
생일 덕분에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뭐 먹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파스타~!'하니 뒤에 계획있는지 묻고는 번화가에 가서 영화보려고 하니 극장이 가까운 곳에 있는 식당에 가서 진짜 맛있는 파스타와 피자를 먹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영화관에 가는 길에 자주 가던 커피 로스팅 공장에 가서 아메리카노 한잔과 원두도 같이 구입했다.
저 중에 한 봉지는 커피에 한해서 입이 까다로운 동생에게 일요일날 한봉지 주면 되겠다.^^
보자마자 사장님도 다른 분과 이야기하시면서 왔냐는 표정이시고 직원분들도 반가워하며 얼굴이 좋아보인다고 다행이라는데 그동안 많이 안좋았나 보다.^^;;;
 


근처 영화관 2곳 중에 제일 가까웠던 곳에 가서 보고 싶은 영화를 골랐는데 골드클래스? 거기로 배정된 곳이여서 비싸긴 비쌌다.
대신 리클라이너에 좌석간의 공간이 넓어서 편하게 봤던 것 같다.

생일맞이 50% 할인 쿠폰으로 구입한 팝콘 콤보.
시간이 많이 남아돌아서 기다리다가 하나 까 먹고 마시고 남은 건 기다리다가 음료 하나 마시고 팝콘 한통은 영화보면서 먹는데 골드클래스에는 웰컴 드링크가 있어서 그거 하나 받아서 같이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는 대만 영화가 원작인 학원물이었는데 재미있었다.^-^

 
집에 오니 사진이 도착해있었고, 사진 정리하고 보니까 이미 인화해서 정리했던 것들이 있었다.

 
미리 한번 더 확인하고 인화주문할 걸 그랬다.^^;;
사진첩은 사진있는 면을 한권에 다 몰아주고 빈 면은 다른 사진첩에 몰아 넣었다. 빈면이 있을거라 생각 못 하고 나뉘었던 거라 그렇게 정리했는데 앞으로 내 사진들로 채워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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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 중에 가장 기초인 에코백을 만들어보고 여행가방도 만들어 보고 했지만, 일반적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손가방도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일부러 가방을 하나 만들려고 했었다.

공방에 만들어져 있는 것보다 조금 더 크게 만들고 싶은데 왕창 크게는 소심해서(?) 못 하겠고 10cm정도 늘려서 만들었다.

천이 두껍고 단단하지만, 1겹이기엔 힘이 그만큼 없었는지 평소 자주 봐주시는 선생님이 부재 증이라 공방 사장이신 선생님이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시면서 2겹을 권하셔서 그렇게 했고 끈도 단순 손가방으로 만들긴 싫어서 어깨에 걸칠 수 있는 솔더백처럼 사용할 수 있게 끈도 조금 길게 뺐다.

 

 

다른 소품들보다 박음질이 잘 나갔고 만드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빨라서 재단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수업 2회만에 저정도 모양이 나왔다.

만들면서 워낙 만드는 속도가 빠르니까 나도 당황해서 속으로 '어? 왜 이렇게 빨리 만들어지고 잘 나오지? 이래도 되나?' 할 정도였으니까.^^;;;

지난주 수요일 수업 때 딱 이정도까지 만들어지고 가방 입구에 띠만 둘러 박으면 되는 거라 다음시간에 마무리하기로 하고 귀가했다.

아직도 이때 생각하면 얼떨떨하다. 왜 이렇게 빨리 잘 되지? 싶어서. ^^

 

 

 

먹은지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오래되었던 찜닭이랑 민초, 애플민트, 녹차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오래간만에 사먹었는데 왜 이렇게 맛있는…!

오래간만에 먹어서 그런가 보다. 진짜 민초는 영원했으면 좋겠다.

 

 

지난 일요일, 교회를 가기 위해 준비하던 중에 가방을 만들기 전에 만든 주방 벙어리 장갑이 생각났었다.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향같은 교회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곳 권사님 한분이 워낙 살림도 잘 하시고 생활력도 좋으셔서 내가 만든 것이 모양이 어설프고 그래도 잘 사용해주실 것 같아서 준비해서 갔었는데 들어가자마자 바로 전달했었다.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오히려 짐이 되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그리고 이날 오래간만에 머리다듬을 겸 1년만에 미용실로 향했다.

다시 염색하고 매직 스트레이트를 하는데 3~4시간동안 앉아있는다고 좀이 쑤셔 죽는 줄 알았다.

헤어디자이너가 조명 때문에 정소리 쪽이 더 밝아 보일거라고 말하던데 첨 하루 이틀은 정수리에만 조명을 켜놨나 싶을 정도로 유난히 밝아서 실패했다고 우울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머리를 감고 그러니까 나름 톤-다운이 되어서 봐줄만했다.

1주일동안 헤어핀이나 머리묶는 것을 조심하라고 했지만, 난 머리 안묶으면 답답하기도 하지만, 생활하는데 지정이 있어서 결국 이틀만에 머릴 묶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지…! 생활하는 것이 먼저여서.^^;;

 

 

드디어 오늘 마무리했다. 예~~!!

중간에 한번 뜯고 다시 박긴 했지만 모두 마무리하고 수정펜의 흔적도 있고 마무리할 때 실수로 날세운지 얼마안된 가위날로 인해 지혈되는 와중에 피도 살짝 묻어서 집에 와서 빨았다. 

 

 

근데 하필이면 이때 가방을 봐주시던 선생님이 가위를 찾길래 건네주면서 제대로 맞물리지 않은 가위날을 내가 잡고 건네주다가 내가 방심하기도 하고 그걸 인지 못 하셨던 선생님이 받으시다가 날에 손가락이 스치다가 베였다.

마침 오늘이었나 어제였나 칼을 갈아서 날을 세워났던 터라 조심했어야 했는데 나도 방심해서 다친 것도 있고 선생님도 놀라셨다.^^;; 속상해하시고 놀라셔서 어쩔 줄 몰라하시는데 내 부주의한 것도 있어서 나도 모르게 애교부리면서 분위기를 무마시키려고 애쓰게 되었다.^^

지금은? 씻고나서 손가락을 치료해서 처음 다쳤을 때보단 상태가 괜찮지~!^^

 

 

지난주에 작은 선물을 준비해야할 일이 있어서 대학 때 인연으로 알고 있는 후배 한명이 한의사라서 부탁하게 되고 구입했다.

그걸 구입하는 이유를 이야기하니 보자기를 싸주겠다길래 고맙다고 했다.

지난 주말에 부탁해서 오늘 도착했는데 너무 이쁘게 잘 싸준 거 아녀?^^

 

고마워. 선물 잘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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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아서 부랴부랴 트로트 가수 콘서트 구석진 자리로 예매하고는 부산으로 향하면서 콘서트 전에 다녀올 곳 한군데라도 다녀오면 그래도 뽕(?)을 뽑지 않나?? 싶어서 재작년 가을에 1박 2일로 부산여행하면서 갈려고 했다가 지하철 방향을 잘못 잡아서 못 가보고 울산으로 백(back)했던 곳이 있었다.

많이 아쉬웠었던 만큼 부산으로 도착하자마자 시간을 무의미하게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그곳에 가기 위해서 부산근현대역사관으로 향했어요.

 

 

예전에 한국은행 건물로 사용했는지 정면 정문에 한국은행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 신기했었다.

 

 

구한말, 일제시대부터 현대까지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고  3~4층에 상설전시장이 구성되어 있고 1층에는 한국은행시기에 사용한 창구 경계를 이용한 카페테리아와 함께 한쪽에 한국은행일 시기에 쓰던 금고에 한국돈에 대한 전시도 잘 되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는. ^^

와보길 잘했었다.

 

 

바로 길 하나 사이를 두고 별관이 있었는데 여기는 1층부터 앉아서 조용히 책보는 분위기라서 감히(?) 휘젓지 못 하겠더라. 그래서 2층에 상설 전시장이 있는 것까지는 자각하지 못 하고 그냥 1층 분위기에 눌려서 잠시 머물다가 나왔었다.^^;; 

이 별관은 일제시대 동양척식회사가 있었던 건물이었다고 하고 부분적으로 그때의 내부 건축방식을 알 수 있는 흔적들을 알수 있다고 해서 갔는데…! 제대로 못 보고 그냥 나왔네…! ㅠㅠ

 

 

집에서 나와서 시간확인할 겨를도 없이 부산가는 차가 와서 지갑도 부랴부랴 꺼내서 버스타고 나니까 이미 점심 때가 다 되었기도 했고 도착하자마자 바로 정신없이 부랴부랴 근현대사역사관으로 온다고 점심을 건너 뛰었다.

 

공연도 5시라 2시간 30분의 공연이 끝날 때까지 공복으로 있기도 그렇고 바로 집으로 가야할 수 있어서 간단한 요기라도 할 요량으로 근처 까페로 갔는데 샌드위치같은 요기할 만한 것이 없어서 핫도그와 유자차를 주문했다.

유자차가 따뜻한 것인 줄 알았더니 찬 거였다.^^;;;

 

근데 출출한 것은 어쩔 수 없더라.ㅜㅜ

마치면 9시 안되어서 나와서 종점에 있는 정류장에 가려고 하면 안그래도 낯선 곳에 식당을 찾는 것도 여의치 않아서 바로 가게 되면 집에 10시는 되어 도착할텐데 그땐 해장국 말고는 배달시킬 곳도 없고 편의점도 도시락이나 삼각김밥같은 것이 모두 나가고 없을 시간인데 그래도 기댈 곳은 집 주변 편의점 뿐인지라…!

노포역에 붙어 있는 고속/시외버스 터미널에 식당 및 패스트푸드 등 음식을 취급하는 가게들도 그때 문열고 있을거란 보장을 못 하니 일단 이렇게 허술하지만 대충 먹고 바로 공연장으로 향했다.

늦게 마쳐서 막차까지 아슬아슬 시간이 안맞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방안이 막히는 것도 아니니.^^ 

 

 

1시간 정도 남았고 부산시민회관은 두번째 방문인데도 길이 낯설어서 택시비도 부담되지 않을 정도이길래 택시타고 달려서 공연장 앞에 도착하니 팬클럽에서 차를 대절해서 왔나??

저렇게 랩핑된 버스들도 있고 굿즈를 파는 노점장사꾼들이 있어서 혼잡했다. 나중에 나와서 길을 헤매는데 보니까 경찰들까지 왔있었더라.^^;;;

 

 

뮤지컬이나 연극이었으면 쳐다도 안보던 한지였던 자리지만, 콘서트인지라 아쉽고 아쉽고 또 아쉬웠어도 일단 당일 구매한 자리로 앉으니 저 슬로건이 있더라.^^

이 중년의 아저씨 왜 이렇게 귀여운데?^^

 

 

콘서트니까 돈내고 티켓사서 자기 보러 와준 사람들에게 애교부리고 잔망떠는 건 당연하다지만, 이 아재 왜 이렇게 나이를 잊은 매력으로 잔망떨고 이쁜짓하는지 진짜 심장 쿵이다~!!^^

나이차가 나도 이런 사람이면 진짜 어른들이 만나보라고 안해도 만나보고 좋아하지.^^

근데 내가 기억하는 가장 젊으신 아버지와 많이 비슷한 장민호에게서 작년에 소천하신 아버지를 보았던 것 같다. 돌겠다…! ㅜㅜ 용케 울지 않아서 다행이다.

 

공연이 끝나고 헤매고 헤매서 지하철역을 찾아 경우 노포역에 도착해서 혹시나 하고 버스내린 곳을 보니 때마침 집에 갈 버스가 서있어서 그냥 식사고 뭐고 바로 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편의점에서 대충 메인이 될 찬거리 도시락을 두어개 사서 집에서 때늦은 저녁밥을 먹고 씻고 잤는데 젊은 시절 아버지와 닮은 장민호를 보고 와서인가 추위에 떨고 와서 그런가 너무나도 잘 잤다.

누가 날 지켜주고 있는 것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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