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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주저리 주저리

[일상] 아버지의 부고...!

by Esther♡ 2024.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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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입원하신지 4주차가 되었다.
강한 독감이 유행하고 더불어 코로나도 다시 기승하는 모양인지 그로 인해 면회도 자유롭지 않기에 가족인 우리도 쉽게 보기 힘들었고,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돌아오시고 인지적인 부분은 응급실에 있었던 일들을 감안하면 나쁘신 편이 아니셨다.
나나 어머니 대신해서 동생이 수시로 연락하고 병원비 대고 물품이 없다면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갔을 때 내가 구입해 넣은 거 말고는 쭈욱 동생이 책임지고 아버지 상태를 묻고 너무 괴로워하고 살기를 포기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그렇지만, 회복하신다고 해도 약간의 불편함이나 제한이 있어도 일상 생활이 혼자서 가능할 정도로 회복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그저 억지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 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아버지를 힘들게만 하는 것일 뿐 최소한의 인간적인 존엄조차 지켜지지 않은 선에서 여러모로 문의를 해도 돌아오는 의료진들의 반응이 처참하게 했다.
 
금요일 날 오후 일반병실로 이동한 후 아버지께서 이미 중환자실에서부터 기도 삽관이 된 상황에서 뭐라고 말하려고 하셨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내게 뭐라고 말하시려고 해도 내가 못 알아들으니 낙담하시는 표정이 너무 역력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누군가를 찾으시는 것과 어머니에 대해서 물어보시는 것일텐데 내가 못 알아들으니 만사가 다 짜증나고 싫으셨던 것이겠지….
그래도 딸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임종을 맞지 못 하게 했다는 분노가 가득 하셨음에도 하나 밖에 없는 정말 아들보다 더 아들같이 하던 막내 사위보실 때마다 그렇게 좋아하시며 웃어보이셨다니….
중환자실에서 봤을 때도 막내는 있는대로 화내시면서 쫓아내시다시피 하셨다는데 사위는  환하게 웃어주셨다길래 으잉??했는데 일반 병실에 왔을 때도 내 보는 앞에서 서류 뗄 겸 아버지 보러 방문한 막내 사위 보시며 환하게 웃어주시고 제부가 자신이 누군지 알아보시겠냐는 질문에 안나오는 목소리로 이름을 말하시는 입모양을 하셨는 걸 눈 앞 1열에서 보는데 사위가 그렇게 좋은가…? 싶으면서도 딸들에게 그렇게 섭섭하셨나 싶었다.
 

 
그러다가 토요일 점심 이후로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셨고 그간 투병하시면서 억지로 소생시키려는 그 어떤 행위를 하지 말고 편안히 가시게 하고자 하는 보호자들의 의견대로 1인실로 옮겨서 조용히 영면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나마 특실이라도 1인실로 옮기고 내가 병원에 보호자로 오면서 어머니를 모셔간 동생네에게 연락하여 오게 하였다.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다들 마지막 인사하면서 모든 걸 내려놓고 편안히 가시도록 다독이는데 무엇이 그리 괴롭하고 두려우신지 너무 고통스러워하시며 힘들어하셔서 정말 지켜보는 여식으로서의 마음이 찢어지고 심장이 있는 곳이 너무나 아팠다.
밤이 깊어가고 특실이긴하나 몸이 약한 어머니까지 있으니 모두가 쉽지가 않은 상황인지라 무슨 일 있으먄 내가 연락하기로 하고 동생 내외가 어머니모시고 새벽에 친정집으로 가기로 했다.
그 사이에 난 기절했는지 잠시 블랙아웃이 있었고 뭔가 묘한 부산함과 소란스러움에 눈을 뜨니 아침 6시도 안된 시간에 간밤에 그렇게 괴로워하던 아버지께서 너무나 조용하셨다.
보호자를 다시 부르라는 간호사의 말에 동생에게 전화를 했고 바로 오기로한 동생 내외와  어머니를 기다리면서 곧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아버지를 붙잡고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애걸복걸했었다 그러면서 아버지께서 1분만, 아니 좀 더 길게 이어질수만 있다면…! 
 
동생내외와 어머니도 오시고 마지막 임종을 지키면서도 맘 한구석이 미어졌는데 심박수를 알려주는 모니터에 삐-!소리와 함께 일직선의 선과 그리고 의사선생님의 사망선고를 하는 소리에 하늘이 무너졌다.
 
일요일 아침. 아버지는 그렇게 천국으로 긴 여행을 떠나셨다.
 
무슨 사진이 어찌 저리 평온하신지…!ㅜㅜ
임종 당시에도 그랬지만, 입관할 때도 만나본 아버지의 표정도 사진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처럼 너무 평온하시고 편안하셔서 평소 그렇게 소원하시던 곳으로 편히 가셨나 보다 싶었다.
 
급한 부고에 알음알음 서로 연락이 안갔던 분들애개로 연락해주셔서 썰렁할 줄 알았던 빈소가 사람들로 분주했다.
울 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에 그래도 덜 외로우셨겠다
빈소에 찾아주고 애석해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고 내 지인들도 정말 감사하다.
 

 
발인까지 마치고 가족들이 모두 부모님과 내가 함께 살던 집으로 모였었다.
쉬면서 아버지를 추억하는데 내게로 온 택배가 있었다.
보니 아버지께서 일반실로 옮기신지 하루밤이 지나고 오후에 마지막을 예감했을 때 친구에게 메신저로 완전 패닉에 빠져서 혼백이 분리되어 서로 나가겠다고 싸울 판이라 불안감이 극강이었던 모습 그대로 보여졌던 탓에 '넌 괜찮아??' 하는 질문을 하는데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너를 잘 안아주라면서 보낸 친구의 고운 선물이 발인하고 집으로 온 날 온 것이다.
깊은 공허함과 두려움, 슬픔으로 인해 잘 잘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타이밍 좋게 도착한 이 거위 녀석 덕분에 오늘 잘 자겠다.
고맙다, 친구야.
 

 
며칠 밖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지내면서 빨래가 쌓여서 두번에 나눠서 돌렸다.
사진 속 빨래가 1차 돌려서 건조기까지 넣어 말리는 동안 2차 빨래 돌려서 건조기 돌리고는 1차 건조된 빨래를 개키기 시작했다.
일이 정말 많다….
 

 
어릴 때부터 생긴 것과 달리 잘 골골거리고 몸이 잘 붓던 딸이라 좋다는 건 많이 먹이셨고 먹는 것만 좀 조절해서 먹어라시던 아버지신지라, 매번 탈나던 거 보수공사(?)하신다고 애먹으셨다. 거기에 10여년 전 고통사고 이후 입원했을 때부터 후유증이 최소화될 정도로 회복되는데 좋다는 약을 한의사인 오빠도 오빠지만, 인맥으로 약재상과 한의사를 통해 해와서 먹이시고 퇴원 후 한동안 다리가 시리고 통증으로 힘들어서 괴로워 하는 나를 위해 열심히 먹이시던 아버지신데…!ㅜㅜ
이후 통증이나 시리는 증상은 없어지거나 많이 줄었는데 붓고 몸이 좀 쳐지고 힘들다 싶은 부분을 보완하는 걸 호박에 더해서 즙 내주신 걸 매년 가을 추수 끝나고 겨우내 두어번 정도 해 먹이셨다.
그거때문에 일부러 호박 농사를 지으실 정도였는데…!
 
이제 이것도 없겠구나.
아까워서 어떻게 먹니….ㅜㅜ
밭에 있는 호박은 못 쓰겠네.
누굴 또 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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