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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 여자의 방랑기/걸어서 세계 속으로 1

[부산/당일치기/가볼만한 곳]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by Esther♡ 2021.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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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3일. 이날 계획상 그동안 가보고 싶었으나 못 가보거나 근처에 관심이 가는 곳들로 4군데를 다 돌아볼 계획인지라 일정이 빡빡했다.
그래도 부산 근대 박물관처럼 가고 싶어도 자체적으로 못 가보면서 자연스럽게 근처에 다른 곳도 건너뛰게 되어버리는 곳도 있지만, 임시수도기념관이랑 감천마을, 박물관, 일제 강제 동원 역사관으로 가려고 하면 오늘은 아무리 거리를 최대한 줄이려고 했다지만 바빴다.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 홈페이지 : museum.busan.go.kr/monument
- 관람시간/관람료


제일 먼저 임시수도기념관을 먼저 들렸다.
임시수도기념관이 1시간 단위로 5명으로 적어도 전날까지 예약이 되는데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당일날에도 입장이 가능했다.

난 혹시나 해서 이날 11시에 예약을 했던 관계로 집에서 부랴부랴 달리고 달렸는데 지하철 토성역에서 나오니까 10여분밖에 안 남아서 UT나 카카오 택시가 아니면 기본요금 내고 갈 거리라서 때마침 승객이 내린 택시 잡아 타고 부랴부랴 달려갔다.^^ 그러니 걸어서 약 7분? 대략 넉넉잡아서 10여분이면 도착할 거리인데 낯선 지역인지라 헤맬까 봐 택시 타고 3분도 안되어서 입구에 도착했다.

 


그냥 걸어서 왔다면 걸어 올라왔어야 했던 계단에 피난민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상이 서 있었는데 가슴 짠한 역사의 한 모습이다.

 


입구에서 방문자 수기로 기록하고 열체크 후 들어갔을 때 보이는 대통령 관저.

일제시대에 경상남도 도지사의 관사로 지어진 2층 목조건물로 전쟁 중에는 피난민들은 물론 대통령 및 관료들까지 모두 내려오면서 부산이 임시수도로서의 역활을 수행할 때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일제시대에 건축되어서 그런가?
대구 서문 시장 맞은편에 계명대 동산병원 뒤편으로 청라언덕 근처에 있던 외국 선교사님들 사택 3군데와 규모는 달라도 비슷한 느낌적인 느낌.

그곳도 여기 이 건물과 같이 근대 건축물로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으니까.

 


현관 위에 있는 한자가 적힌 현판이 있는데 저 필체가 누구의 필체일까?
생각 사와 집 당은 알아봤는데 가운데 있는 한자는 못 알아보겠네.^^;;
당시엔 생각 사와 집 당까지는 알아봤는데  중간에 알아보지 못 한 글자는 나중에 후기를 작성하려고 찾아보니 나라 이름 빈이라고 한다.

 

근데… 내가 한자를 한의사인 오빠나 교대 국어교육 전공한 동생보다 모른다고 하지만 이럴 만큼 못 알아보지는 않을 텐데 이만큼 못 알아보나…! 해서 당황했었네.


경상남도 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한 뒤, 정화작업을 거쳐 1984년 6월 25일 임시수도 기념관으로 개관할 때 대통령 관저의 당호라고 한다.
개관에 즈음하여 역사학자 정중환 선생이 지은 당호를 독립운동가 한형석 선생의 글씨로 현판을 새겨 걸었다.

 


현관으로 들어가서 화장실을 지나 응접실로 가면 이렇게 모형으로 만들어 놨다.
보면 신기한데 난 구석구석 가보고 싶은 욕구가…!!^^

 


난 난방만 잘 되어 있다면 이런 구조의 집도 정말 좋다.
햇볕도 잘 들어오고 이렇게 'ㄱ'로 창문이 있는 것도 재미있기도 하고 분위기도 좋다.^^

 


벽난로가 있는 응접실은 가족들을 위한 공간인 거실과 달리 손님들을 응대하기 위한 공간이기도 해서 적절히 잘 꾸며진 공간이라 집 안에 있는 작업실? 업무실?? 같은 느낌이다.^^
당시 서양문화에 대한 동경심이 강한 일본의 성향에 외국 선교사나 서양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와서 건물을 짓던 시기이기도 해서 그런지 근대 건물이 서양식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오래된 건물이라는 것이 알수있는 게 금이 가서인지 비가 샌 흔적인지 보수하던 흔적이 선처럼 보인다.


응접실 옆에 있는 서재.
이승만 대통령의 모형을 만들어서 당시의 모습으로 만들어 놨는데 지위와 권력, 인정받고 대접받는 것에 대한 욕심만 안 부리고 학생들을 주축으로 일어나 데모로 하야하는 것처럼 마무리만 나쁘지만 않았으면 그래도 후세의 평판은 좀 괜찮았을까…?
그래도 더 이상의 희생은 없도록 그 정도에서 하야하고 물러나서 다행이지.

 


서재를 지나 보면 이승만 대통령과 프렌체스카 여사가 사용했을 내실.
당시의 모습으로 재연하여두었는데 소박함이 묻어나는 것 같다.
응접실 외에 전등이 같은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저 시기에는 저것도 최신식이겠지.
저것도 멋있는 것 같은데 그닥 전등이 밝지는 않은 것 같다.

 


사진은 없는데 모형이 있는 거실 지나서 있는 다이닝, 식당의 모습.

대통령 내외와 직원들이 사용했던 공간이라고 하는데 부엌 옆에 식당이란 칸이 더 있긴 하지만 여기가 더 눈이 가고 더 다이닝 같은 공간이다.

여기를 거실로 써도 상관없을 면적인데 부엌 옆에 있는 공간이니 다이닝 공간으로 사용해도 나쁘지 않을 공간인 것 같았다.

옆에 있는 다른 식당 공간과 지금 보이지 않지만 지금 서있는 입구 옆에 있는 벽 쪽에 그릇장이 있어서 당시 사용했을 그릇들을 장식되어 있다.

 


근데 내가 한 번씩 듣는 소린데 정말 옛날 것에 관심 많고 앤틱이라고 하기엔 너무 무직한 분위기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빈티지 같은 저런 분위기의 가구나 그릇 같은 것이 왜 그리 좋은지~.^^
잠시 취향 저격하고 지나간다.

 


도면 같은 안내문엔 여기도 식당이라고 하는데 재연해둔 걸 보면 꼭 광같아요.^^;;
쌀뒤주도 있고 놋그릇 정리해둔 그릇장도 있는 걸 보면 그래 보이는 식당이네요.^^;

 


식당 두 칸을 지나서 보이는 부엌.
또다시 다이닝 룸에 이어서 상부장이랑 환풍기가 없다는 것과 수전만 빼고는 완전 제 취향 저격해버린 부엌 구성에 취향 저격당한 나…! ☆*: .。. o(≧▽≦)o .。.:*☆
근대적인 주거 양식이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다.^^
건물 건설 당시의 보편적이고 최신 설계로 만들어진 거라 당시의 건축 양식과 주거양식을 알 수 있는 중요자료인 것 같았다.
대구 서문시장 맞은편에 계대 동산병원 뒤쪽으로 청라언덕에 보면 의료 박물관으로 쓰이는 것 같이 외국 선교사님 사택으로 쓰였던 근현대사 사적으로 문화재 지정된 건물들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보는 것 같다.^^

 


부엌 맞은편에 생각의 방으로 꾸며진 조리사 방은 한두 명이 생활하기에 적당한 크기여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면 적당한 크기였다.
붙박이 장 앞에 고풍적인 의자가 놓여 있고 앞에 그런 분위기의 벽장에 부산 역사와 여러 관련 책자들이 있어서 편히 앉아서 볼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옆에 원래 경비실로 사용된 곳에 마련된 증언의 방으로 향했는데 거기는 한국전쟁 당시 특공대원으로 참가했던 이정숙 할머니의 증언을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어서 할머니의 모형과 당시 사용되었을 옷과 신발, 철모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마네킹으로 재연해둔 이정숙 할머니의 모습은 들려지는 목소리와 함께 강단 있고 은근한 카리스마가 있고 당당한 모습이다.
기세 좋고 기상이 높은 장군의 염원이 여성의 몸에 깃든 것만 같은 기운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화장실과 욕실을 패스하고 증언의 방에서 나와서 바로 있는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는데 1층 현관에서 바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어서 어느 방향으로 올라가도 상관없다.
근데… 양쪽 다 가파르다 보니 조심해야 하는 면이 있다.

 


올라가면 바로 보이는 집무실는 이승만 대통령이 개인 업무를 보고 프란체스카 여사가 관저의 살림살이를 보던 공간이라고 한다.

1층처럼 당시의 모습으로 재연을 해두었으면 좋겠다 생각을 했었는데 2008년에는 전시장을 설치하여 이승만 대통령의 유품과 당시 자료들을 전시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모두 철거하고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저렇게 현수막처럼 연표와 변천사 같은 것들이 적힌 것들이 걸려 있다.

 


일식과 서양 근대 건축 기술이 접목되어서 그런지 그런 양식이 잘 보이는 대통령 관저인데 1층도 그렇지만 2층이 더 그런 것이 잘 보이는 것 같다.
마루 바닥이며 실내 구조를 보면 일식 건축양식이 보이고 대다수의 입식 생활문화가 들어오고 외관의 건축모양은 서양식인데 유난히 2층은 일본의 고택 주거 양식에서 볼만한 일식 실내 구조가 보이는 것 같아요.

 


집무실 옆에는 임시수도 관련 영상물을 보여주는 회상의 방이 있다.
관저에 방문한 손님이 쓰던 마루방이었는데 일종의 게스트룸? 그런 거 같다.
이날 하루에 가볼 곳들이 있고 대체로 운영시간이 제한된 곳들이라서 얼른 가봐야 하다 보니 느긋하게 음성이나 영상, 책을 볼 여력이 안되어서 결국 보지 못 하고 그냥 돌아 나와야 했다.
하지만 2층으로 올라갔던 계단 말고 현관 옆에 있는 직선 계단으로 내려갔는데 그곳 직원분 말처럼 옛날 건물이라서 계단이 상당히 가파르기도 하고 좁은 것도 있어서 잡을 난간 같은 것이 없기도 하다 보니 내려가는데 엄청 긴장했네….^^;;;

 


관장실을 지나 뒤쪽에 있는 전시관을 향하는 길에 본 길고양이.
어찌나 쌀쌀맞은지….^^;;

 


대통령 관저 뒤에 위치한 현재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1987년 9월에 개원한 부산 고등검찰청의 검사장 관사 용도로 지어진 단층의 벽돌조 가옥이다.
현재 전시 흔적을 없애고 봐도 세련된 느낌이 있다.

또한 이후 검찰청사의 이전에 따라 2002년 임시수도기념관 영상관으로 개편되었다가 전면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2012년 9월 19일자로 한국전쟁기 임시수도로서 국난을 극복해낸 부산의 위상과 역사성에 대한 내용을 보여주는 전시관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 관저만큼이나 호기심이 들어서 바로 갔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오는 기차 한 칸을 재현해두고 거기에 부산이 임시 수도로 역할을 하게 되고 재건하기 위한 영상이 재생되고 있어서 보고 느끼게 되는 무언가가 있게 되는 것 같다.

 


야쌉하게 허를 찌르며 공격하는 광기 어린 북한군의 기세에 맥없이 부산까지 밀려왔다가 다시 중국이 있는 국경 근처까지 밀고 올라가고, 또다시 중공군의 합류로 서울로 환도했던 정부가 부산으로 돌아와야 했던 걸 생각하면 뼈 아픈 역사의 흔적이 보존되어 보여지고 있다.

 


전쟁 이후 재건 시기에는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이었기에 일자리를 찾는 이들은 장사를 하기도 하고 막노동도 하기도 하겠지만, 그러기 전에는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이 처자식,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한정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구직(求職)'이란 팻말을 목에 걸고 일자리를 찾아다닌 걸 그 시기를 거쳐오신 어른들의 말씀들을 들어 알고 있어서 마음이 많이 아팠던 것 같다.

 


피난민들이 쓰던 물건들과 구호물자들도 전시되어 있다.
늦둥이 오브 늦둥이인 내가 어릴 적 옛날 옛적의 영화가 TV에서 할 때 미군  혹은 유엔군이 구호 물품을 나눠주는 장면에서 저럴 때도 있었다며 더 타고 싶어도 한정되어 있었고 미군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연줄이 있어서 한 줌이라도 더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저마저도 없어서 못 받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었다.

 

 

국제시장에서 보면 피난 온 주인공 가족이 부산 고모집에 왔을 때 봤던 그 토굴 방 같은 판자촌 집이 재연되어 있다.

안에도 그렇게 살았을 법한 모습으로 재현해두었는데 부모님께서 부산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었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래도…! 그렇게 고생하시면서 사시고 살림 이루셨지만 그래도… 이런 판잣집에서 그렇게까지 고생하셨다면 엄청 맘 아팠을 것 같다…!

 

 

학교종, 학교 문을 재현해둔 걸 보면 친근함이 묻어난다.

언제나 부모님의 자식들을 공부시키시려는 열정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그 전쟁통에서도 천막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걸 보면…!

민족적인 특징인 것 같기도 하다.

 

최대한 밝기 조절해서 사진이 흔들리는 것이 없게 하려고 했는데 정말 이럴땐 힘드네 …!

 

한국전쟁 때문에 당시 반공 독본이 있는 것을 보면 그럴 만도 하지 싶고 당시 쓰였던 교과서며 잉크병 주판도 신기하다.

당시 쓰이던 것들을 보면 저 당시에 어떤 학용품(?)을 쓰고 어떤 교과서를 쓰고 소설책이 있는지 보는 것도 알 수 있게 전시되어 있다.

 

 

다방 [밀다원]을 재현해도 곳을 볼 수 있어요.

한쪽에는 당시 문화제나 연극 등의 팸플릿이나 부산 사범학교 졸업장 같은 것이 전시된 것도 볼 수 있다.

 

 

 

 

 

 

 

서양에서던 한국에서던 다방은 지식인들과 문인들의 방문이 잦고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뤄졌다는 것을 알고 그만큼 문학적인, 지식적인 교류가 이뤄졌을지 짐작이 가능하다.

 

근데… 정말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버린 거지만 진짜 이런 가구나 그릇이 정말 좋다. (●'◡'●)

 


전시실을 모두 둘러보고 부산 한 곳에서 있었던 임시 수도 시절과 경제적, 사회적 발전상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근현대적인 건물도 겸사겸사 볼 수 있음에 감사했고, 이런 어려움, 고난을 겪었음에도 지금과 같은 발전을 이뤄내신 어르신들의 수고와 노력에 감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 개인적인 방문기입니다.
여러분의 공감♡과 댓글은
곰팅이 같아도 감수성 풍부하고 여린 제게 아주 큰 힘이 됩니다.
가시기 전에 꼭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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