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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 여자의 방랑기/걸어서 세계 속으로 1

2016년 11월 29일 덕수궁 & 석조전 방문

by Esther♡ 2019.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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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23.에 작성한 답사기입니다.

 

역시 작년에 이어 1년만에 또 왔네요. 운좋게 예약한 석조전만 다녀가긴 너무 아쉬워서 겸사겸사 미술관까지 같이 방문할 겸해서 덕수궁까지 같이 왔어요. 이미 와보기도 했고 경복궁보다 규모가 작아서 두어시간씩 잡아먹을 이유가 없어서 오전엔 덕수궁, 오후엔 창경궁 하려했더니... 예상치 못한 변수에 창경궁은 다음으로 미뤄야했네요...^^;;


덕수궁은 전반적으로 경복궁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청 소박하고 검소하기까지 해 보이는 편이에요.

경복궁이 왕의 본가라면 덕수궁은 약간 별장같은 느낌??나중에 창경원에 다녀온 뒤론 별장은 창경원이고 덕수궁은 다소 별채같은 느낌이 되어버리더라구요.^^;;

 

 

 

 

저렇게 지붕에 조선 궁궐이나 건축물에 한번씩 보는 것 같아요.

 

 

 

 

덕수궁은 저렇게 전기가 들어와서 서구식으로 꾸며지기도 해서 경복궁과는 다소 다른 궁으로서의 매력이 있어요.

 

 

 

 

여기도 역시 경복궁만큼 길지는 않아도 왕도는 가장 높고 양쪽으로는 나 있는 신하들의 길은 상대적으로 낮네요.^^

 

 

한번씩 사극에서 밤중신에서 왕이 있을 것 같은 큰 건물에 큰 횃불 같은 것을 해둔 경우를 봤었는데 그때 봤던 화로 같은 것이 저거네요.^^

 

 

덕수궁의 중화전은 전반적으로 경복궁의 근정전에 비해  작고 엄청 소박하고 검소하기까지 해 보이는 편이에요.

그래도 이 건물은 덕수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의식, 조례, 외국 사신 접견등 주요 국가적인 의식이나 행사를 치르는 곳으로, 1902년에 처음 지어질 당시에는 중층이었느나, 2년 뒤 화재로 소실된 뒤, 2년이 지난 1906년에 단층으로 중건이 되었다고하네요. 그래서 유난히 작아보이고 검소하리 만큼 소박해보였던 것이겠죠.

경복궁의 근정전에 갔을 때도 그랬지만 여기서도 천정을 보게 되더라구요.

 

 

 

저 천장에 있는 것이 무슨 동물일까요?^^

자세히 보면 용이라는 걸 알수 있고 굳이 역사적 상식이 있다면 왕이 있는 장소이고 왕과 관련된 직무나 행사 등을 하던 건물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그 위해 용이 있을거란걸 알겠죠.

 

정전 내부에는 접속의 집이란 의미의 '닫집'이 있고 그 안에 왕이 앉으시던 어좌가 있고 그 뒤로 세번 꺽인다하여 '삼절곡병'이란 병풍이, 그 뒤엔 마지막으로 왕을 상징하는 '일월오악도'가 배치 되어 있어요. '일월오악도'는 왕이 사용하는 곳 어디에든 병풍으로라도 있었던 걸 본 것 같네요...^^;;;

일월오악도는 나중에 갠적으로 찾아보셔요. 아님 현장에 설명이 잘 되어 있으니 직접 가서 보시는 것도 역시 강력추천할 만큼 권합니다.

 

 

고종이 신하나 외국 사신을 접견한 곳이자 함녕전이 지어지기 전까지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하다가 훗날 고명딸 덕혜옹주를 위해 유치원을 개설하기도 했던 준명당(왼쪽)

 

15대 광해군과 16대 인조가 즉위하고 1897년 고종이 환궁한 직후 정전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던 즉조당(오른쪽)일대에요.

고종이 정전으로 이용할 당시  즉조전의 이름을 태극전, 중화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네요. 그러다가 1902년 새로운 정전이 세워지자 다시 즉조당으로 불리게 되었고, 1904년 화재로 손실되었는데 그해에 다시 석어당, 함녕전과 같이 중건하였으며  고종의 후비인  순헌황귀비 엄씨가 1907년부터 19117월 승하할 때까지 이곳에서 거처하셨던 곳이라고 합니다.^^

즉조당은 준명전과는 복도로 이어져 있어요.

 

 

저긴 석어당이네요.

덕수궁에 현존하는 유일한 중측 목조건물로 선조가 임진 왜란 중 의주로 갔다가 환도한 후 거쳐하고 승하하신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해요.

 

 

궁에서도 여름을  맞바람이 들고 나서 더위를 이기고 공간활용에 한 방안으로 저렇게 어느 반가에서도 볼 수 있는 주거 형식이 있네요.

 

 

중층이 되어 있는 곳이라 내부에 저렇게 계단이 놔저 있기도 하구요.

석어당은 신기하게도 어지간한 궁궐들의 건물들이나 사찰들을 봐도 지붕에 단청이 되어 있는데 여기는 궁 밖에 있는 반가의 지붕처럼 단청이 되어 있지 않는 "백골집"이라고 하네요.

 

 

 

석어당을 지나 석조전만큼이나 서양적인 건물이면서도 동양과의 조화를 이룬 정관헌은 러시아 건축가 시바찐의 설계로 궁궐 후원의 언덕 위에 지어진 휴식용 건물로 고종이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외교관/외국사절단들과 다과회, 연회를 즐기던 곳이기도 해요.

 

 

 

 

 

 

정관헌은 서양적인 색채에 동양 중에서도 한국적인 색채가 물씬 묻어 나는 곳이에요.

 

 

 

 

 

 

 

 

여기도 수문장 교대식이 행해지는데 1030분에 예약한 석조전 관람을 11시로 착각해서 기다리던 중이라서 쫓아가진 않았는데 시간을 제대로 확인만 햇다면 이렇게 무료하게 시간을 맥없이 버리지는 않았을텐데요..ㅜㅜ


시간을 착각해서 놓쳐버린 것을 직원분이 11시 타임은 사람이 없어서 취소되었다고 하고 그 시간에 예약한 줄 알았던 전 당황해서 나와 있던 명단을 혹시나 하고 확인하니 30분 전에 예약했음 확인하고는 난감해하니 그걸 보시고 직원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앞선 해설 관람을 할 것인지 물으시는 걸 절레절레하곤 "죄송한데 혹시 당일 예약은 안되죠...?"하니 된다면서 1시였나, 2시였나 그때 가능하냐하시기에 당장 콜~~!! 외치고 예약자 명단에 올리고 보니... 아차~! 이미 창경원 후원 예약을 2시에 해두었던 것이었으니...!

미리 돈을 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약한 거이라서 문의하니 예약하고 오지 않음 자연 취소고 그 빈자리는 당일현장예약으로 채워진다고해서 우선 일단 안심을 하고 담날 예약해서 가자하고 다시 덕수궁 입장료를 지불하는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기다렸죠~!^^

 

 

조선시대 건물 중에 석조전 서관과 함께 돌로 된 건축물이라고 하죠.

 

유럽풍의 석조건물로 당시 유행하는 건축 양식을 알 수 있는 석조전은 그냥 보면 지상 3층건물로 볼 수 있지만지상 1층으로 보이는 지층과 1, 2층 그렇게 총 세개의 층으로 이뤄져 있으며 제가 관람하기 위해 재 방문했을 때 카페였던 걸로 기억되는 작년과 달리 지층은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공사 중이었던 관계로 못 가보았어요. 지금은 다 되어서 관람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저기 위에 있는 꽃이 무슨 꽃 같으세요?^^

저 작년에 왔을 때, 안에 관람은 못 하고 아쉬운 마음에 바라봤을 땐 무궁화로 보았었는데 아니더라구요. 왕실을 상징하는 이화()라고 부리는 오얏꽃이라고 하더라구요. 어느 자료에서는 이화라고 하니 같은 음의 다른 한자를 쓰는 배꽃이라고 기술한 곳이 있던데 아니구요, 그날도 당시  이화여대의 전신인 이화학당에 쓰는 배꽃을 말하는 이화()도 하다보니 질문 있다보니 해설해주시는 분이 음은 같은데 한자가 다르고 배꽃이 아닌 왕실을 상징하는 오얏꽃으로 오얏은 우리가 현재 자두를 가르키는 말이라고 하시더군요. 오얏이란 말은 전래동화나 어르신들 말씀 중에 많이 들었긴 하지만 매번 잣이나 버찌같은 걸로 헷갈렸던 탓에 명확하지 않았는데 그날에서야 제대로 확인했죠...!^^;;;

 

 

 

 

 

 

 

가을의 햇살이 어여쁜 낙엽으로 풍요롭게 수놓네요.^^

 

 

 

 

 

 

 

 

 

중간중간 어떤 공간인지 확인이 안되거나 혹은 확인은 되었지만, 고증이 부족해서 재현하지 않고 전시물로 꾸며두었더라구요.

 

 

 

 

접견실인데 어지간한 서양 궁궐의 내부를 보는 것 같았어요

 

 

 

 

 

 

 

 

 

 

 

 

 

 

 

 

 

 

 

 

 

 

 

 

대식당에 들어서면 석조전의 내부구조를 보실 수 있는 창이 있는대요, 복원하면서 이 곳을 남겨두어서 볼 수 있게 마련하신 것 같아요.

근데 왼쪽에 거무스런 긴 줄같은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난방을 위한 온수 배관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지어지고 나서 보수공사가 있었다고 해요.

 

오랜 세월을 온돌문화에 익숙하고 좌식생활을 하던 탓에 바닥이 뜨끈해야지 따뜻한 줄 아는 문화에 젖어 있었던 탓에 입식인 서양 건축 및 주거환경으로 인해 한국적인 온돌 주거환경이 아닌 만큼 벽난로로만 난방하기엔 너무 춥고 찬바람이 좀 셌을 거라 사료된다고 해요.

 

 

 

 

 

 

 

 

식탁 위 양식기들과 잔들의 배열에서도 당시 서방국가의 생활양식을 많이 표방하려고 했다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나왔을 때 마침 수문교대식이 이루어져서 약 20여분을 지켜봤네요.^^

정말 좋았어요.

지금의 덕수궁과 석조전은 어떨까요? 다시금 또 가고픈 마음이 가득하네요.

 

 

 

☆ 여러분의 공감과 댓글은

곰팅이 같아도 감수성 풍부하고 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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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기 전에 꼭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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