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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 여자의 방랑기/걸어서 세계 속으로 1

2016년 11월 28일 가자~!! 경복궁으로~!

by Esther♡ 2019.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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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19.에 작성

 

 

27일 일요일날 애정하는 배우 팬카페 10주년 정모가 있는 걸 냅다 질러서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 결혼식이랑 면접들이 있다고 하고는 서울로 날라서 많은 팬들 속에서 애정하는 배우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찬란을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었네요.

그러고 다음날... 그곳에 또 갔네요 또...! 월요일날 사진찍을 곳도 필요했고 월요일날 문 여는 궁이나 박물관 같은 곳이 없어서...란 궁색한 이유로 또 궁으로 갔네요. 대신 제 사진은 따로 제 가까운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따로 분류했어요...!^^;;

 

 

 

 

 

 

 

가운데 길이 양쪽 길보다는 몇cm는 차이가 나는데 그건 가운데는 왕이(행사시 왕비가 함께) 가는 길, 거기에서 몇cm 낮은 양쪽 길은 신하들이 가는 길로 차이를 둔 거라는 건 알 사람들은 다 알거에요.

 

 

 

 

 

 

저 자리가 보는 것만으로도 왜 이리도 탐나죠?​ 이미 옛왕국의 왕좌인데...!^^;;

 

 

 

 

궁이 모두 나무로 되었던 건축물이라 큰 주요 건물엔 물을 담아두는 저런 두멍이 있는데 불가지고 장난치고 화재를 일을키는 도깨비? 귀신?? 그들이 저기에 고인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래서 도망가서 불이 나지 않게 해달라는 바람만큼 취약한 화재를 방지하려는 맘이 컸던 것 같아요.

 

 

 

 

 

 

 

 

 

 

 

 

 

 

 

 

저 토기 인형의 얼굴이 다소 해학적이지 않나요?^^

 

 

 

 

 

 

 

 

 

작년에 방문했을 땐 장들을 보관하던 창고인 장고개방이 되어 다 볼 수 있었는데 올해는 꽁꽁 싸매놨더라구요. 아쉬움을 안고 다른 곳으로 향했죠.^^

 

경복궁의 소주방은 안소주방으로 불리기도 했던 내소주방, 밖소주방으로도 불리던 외소주방, 생물방 등 3구역으로 나뉘었는데 내 소주방은 임금과 왕비의 일상식들인 수라를 만들던 곳, 외소주방은 궁중의 잔치, 고사음식, 명절음식, 왕과 왕비의 탄신일, 관례나 가례등의 잔치음식을 차리던 곳, 생물방은 임금의 간식인 다식, 즉, 과일, 떡, 차 등을 차리던 곳으로 창경궁 창건 때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다가 고종 때 중건하면서 거립되었죠.

 

그후 일제가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하는과정에서 경복붕의 여러 전각들과 함께 헐려 없어졌고 2011년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2015년에 지금의 소주방이 복원완료되었데요.

 

 

 

동궁권역을 복원하는 과정에 확인되어 발굴조사를 거쳐 2015년에 소주방 권역의 건물들과 함께 복원되었데요.^^

전체 지금 4 미터, 내부 지름 1.2미터, 전체 높이 4미터면 제법 크죠?

이 우물이 내소주방과 외소주방 사이에 위치한 걸 보아 소주방에서 필요한 생활용수로 사용되었을 거라해요. 현재 파악하기론 경복궁 안에는 이 우물을 포함한 총 7개의 우물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처음 방문햇던 곳이 외소주방이었나요? 아님, 생물방이었나요...? 헷갈리네요...^^;;;

 

 

 

 

 

 

 

내 소주방은 역시나 나 소주방이야~!하듯 크기도 소주방이라고 들어가본 곳 세군데 ​중에 제일 넓었고 잘 되어 있었는데다가 왕이 드시던 수라들을 재현해둔 상이 있더라구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특산물과 진귀한 재료로 조리한 음식들로 수라상을 올렸다고 하는데요, 보통 붉은 칠한 큰 둥근상(대원반)과 작은 둥근상(소원반), 내모진 책상반으로 세개의 상으로 차려져서 나갔다고 합니다. 그 중에도 책상반은 고기와 채소 등 전골재료를 올려놓는 전골상이라고 해요.

 

 

 

 

 

아침 수라상이라는데 정말 단촐하네요...?^^;;

 

 

 

낮것으로도 부리던 점심수라. 간식까지 총 5끼를 드시던 임금님에게는 이 정도면 정말 점을 찍을 정도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화려하지 않나요...?^^;;;

임금님의 상이라면 삼시 세끼 화려하게 드실 것 같은데 말이죠...!^^;;

 

 

자 이제부터 우리가 잘 알고 간혹 사극에서 보았음직한 수라상이네요.^^

 

 

 

 

 

 

 

 

 

 

 

 

 

 

 

 

 

 

 

 

 

 

 

 

 

 

 

 

곤녕합...!

여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평가 되지만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던 곳이기도 하네요.^^

그리고 모습이 일반 궁궐 건물같지 않게 양반가옥​ 같은 모습이네요.

그래서 귀품이 있으면서도 다른 궁궐 전각들보다 편안해지는 것일수도 있구요.

 

 

 

나비가 되어 날아가길...!

 

 

 

왕세자 및 세자비의 거처였던 자선당 기단과 주춧돌.

자선은 어진 성품을 기린다는 뜻으로 여러번 화재로 소실과 중건을 반복하고 왜란 후엔 고종에 의해 중건이 되었는데 국권 상실 이후 1914년 일본이 철거하여 일본에 가져갔는데 오쿠라 기하치로는 1916년에 자선당을 자신의 자택으로 옮겨 조선관이란 현판을 달고 사설 미술관으로 사용하였다네요.

이후 관동 대지진때 모두 소실되고 기단과 주출돌만 남게 된 것을 1993년 당시 문화재전문위원 김정동 목원대 건축학과 교수가 발견하여 1995년에 들여왔으나 구조 안전상의 문제로 동궁 권역인 자선당 복원 건물의 기초로 재사용하지 못 하고 지금의 자리에 남게 되었데요.

원래 있어야할 장소가 아닌 멀리 떨어진 곳에 기단과 주춧돌만 덩그러이 있는 게 허무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집옥재 일원인데 왼쪽부터 팔우정, 집옥재, 협길당 순이에요.

 

1876년 경복궁에 큰불이 나자 고종이 창덕궁으로 옮겼다가 17년 다시 경복궁으로 환궁한 뒤 주로 건청궁 기거했다고 해요.

이미 창덕구에 지어진 집옥재와 협길당 등을 18년에 건청궁 서편으로 옮겨와 자신의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되었다네요.

집옥재는 양 옆벽을 벽돌로 싹고 내부를 증 2층으로 만들어져서 지금은 도서관으로 꾸며 놓아서 들어가보면 지금은 안전상 통제할지라도 과거엔 내부에서 2층에 왔다갔다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더라구요.

팔우정도 역시 2층으로 된 팔각형 모양의 정자로 지금은 카페처럼 꾸며서 잠깐 차를 마시면서 쉴 수 있게 되어 있었어요.

건물사이에 보이는 복도를 통해 하나의 내부로 연결되어 있고 다소 이국적인 건물의 분위기에 경복궁에서 가장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작년에 왔을 땐 개방이 되어 있지 않아 들어가보지 못 했지만, 올해는 달리 개방이 되어 있어서 내부를 볼 수 있었네요.

 

 

 

 

 

 

 

 

여기까지 돌아보곤 나오는 길에 이미 사진찍으면서 민속박물관을 포함한 몇군데 빠트리고 다녔다해도 이미 10시쯤에 들어가서 두시간여를 돌아다녔던 탓에 예전 사고로 다친 다리 중에 발목이랑 무릎을 다 다친 왼쪽 다리가 "니 몸무게로  여기서 적당히 하지 않으면 나 곧 파업할거야~!"하는 약간의 신호가 온다 싶어서 허겁지겁 더이상 다른 곳으로 가볼 생각을 못 하고 그대로 프리덤을 위한 걸음이 시작했었네요.

 

 

 

 

마지막으로 석조전으로 마무으리~!^^​

 

 

월내객사도 있었다는 걸 깜박하긴 했는데 그래도 좋네요.^^

그리고 ​수문장 교대식이 있긴했는데 정신없이 본다고 제대로 된 사진을 찍지도 못 하고 여기저기서 카메라 및 그 기능이 있는 디지털기기란 것들은 다 나와서 들이대는 통에 찍을 환경도 되지 못 했네요.

 

 

 

 

 

☆ 개인적으로 비용을 부담하고 다녀왔던 후기입니다.

여러분들의 공감은 소심한 곰팅이같은 저를 춤추게 하면서

열심히 하게 되는 계기가 되요.

여러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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