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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 여자의 방랑기/걸어서 세계 속으로 1

2016년 8월 4일 양화진을 방문하다.

by Esther♡ 2019.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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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11. 12.에 작성한 방문기 §

 

 

무척이나 더웠던 올 여름... 그렇게 목을 매고 좋아하던 배우 한번 더 보겠다고 그 더운데 기를쓰고 올라가는 것도 가는 거지만 그 배우가 나오는 뮤지컬 작품도 그 때 워낙 호불호가 강해서 좀 더 낫아지고 변하는 것이 있을까 싶어서 보고 싶은 마음에 올라갔다가 다음날 내려오는 길에 다시금 들린 양화진이었어요.

숙소에서 가까웠던 탓에 지하철을 이용해도 되었지만, 살인적인 더위 탓을 핑계로 택시타고 갔던 덕에 지난번에 못 봤던 곳도 보게 되었네요?^^

 

 

 

 

이 건물 터는 무엇일까요?^^

 

 

 

국방의 요지인 양화진에 영조 시절에 경비를 하기위한 군진을 세워두었는데 그 중에 일부라네요.^^

작년에 방문했을 때 올 초까지만 전시한다고 기억하고 있던 로제타 홀 기념 전시회가 아직 하고 있더군요.^^

 

 

 

 

저기 보이는 곳은 선교사님들이 배를 타고 건너왔던 바다를 표현한 것인데 진짜 소리까지 파도소리를 나타내서 실감나요.^^

 

 

 

 

 

 

제임스 홀과 로제타 셔우드 홀 부부의 ​흔적을 보니 또 다시 감격이네요...!^^

 

 

 

 

 

로제타 셔우드 홀 선교사님은 하루하루 일기를 쓰시면서 선교사역을 하시면서 있었던 일들, 일상들, 심지어 셔우드 홀 선교사님 잉태와 출산, 양육에 관한 세세한 걸 기록하신 걸 보면 역시 기록의 힘은 대단한 것 같아요.

 

 

 

 

 

제임스 홀 선교사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로제타 선교사님과 아들인 셔우드 홀 선교사님, 남편이 남긴 딸이자 유복녀인 마가렛. 근데 당시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두세살 밖에 안된 마가렛을 잃고 남편 옆에 묻으셨을 때의 로제타 선교사님의 심정을 셔우드 홀 선교사님께서 자신의 책에 그대로 옮겨두셨는데 그 심정이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와서​ 많이 아리고 슬프더라구요...!ㅜㅜ

 

 

 

 

 

 

 

 

 

요건 로제타 선교사님이 배 타고 조선으로 오시고 선교지에 도착할 때까지 일정과 인상들을 긴 두루마리에 적어서 보고하셨다고 해요.

이제부터 셔우드 홀 선교사님 관련 자료들 시작~!

 

 

 

위에 보이는 건 크리스마스 실의 초기 모습이네요. 셔우드 홀 선교사님이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도 누이처럼 따르던 에스더 박(본명: 김점동)이 의사로서 소명을 성실히 최선을 다해 수행하던 중 결핵으로 사망하자 그렇게 죽는 사람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의사가 되고자 했다네요.

그렇게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서 결핵에 대한 계몽을 위해 어떻게 하면 될까 고민하던 중에 탄생했다는데 자서전에 보면 웃지 못 할 에피소드들이 많아요...!^^

 

 

한국에서는 조선회상이라고 번역된 셔우드 홀 선교사님의 자서전이요.

꼭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선대 부모님 세대부터 자신이 선교활동하던 시기에 사역하면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들과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가 보여요.

그 시기에 으례 그랬지만서도 어떠게 된 것이 셔우드 홀 선교사님의 부모님들께서도 아버님이신 제임스 홀 선교사님께서 전염병으로 돌아가시고, 유복녀로 태어난 셔우드 홀 선교사님 동생인 마가렛도 2, 3살 때 전염병으로 죽어서 로제타 선교사님이 가슴에 여러개의 치유되지 않는 비수를 꽂혔음에도 양화진에 묻으신 것처럼 그렇게 셔우드 홀 선교사님도 이 땅에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한명만 살아남고 죽은 아들을 묻으셔야하는 아픔을 겪으셔야 했으니...!ㅜㅜ

 

 

 

 

 

 

무거운 맘으로 밖에 나왔어요.

여기 양화진에는 관리안되었을 때 한국인도 땅을 사서 묻히기도 하고 한국 전쟁 때 사망한 미군도 묻히기도 하고 일제시대 외교관이나 상인들도 묻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이름을 대면 알만한 선교사님들 대다수 묻히셨어요.

저희 아버질 도와주셨던 레이몬드 프로보스트(Raymond Provost, 한국명 부례문)선교사님이나 이분의 아내되시기도 하고 선교사이시며 미션키즈이셨던 마리엘라 탈메이지 프로보스트(Mariella Talmage Provot. 한국명 부마리아)선교사님의 외조모님처럼 양화진이 아닌 각자 자신들이 사역하거나 가족의 사역을 거들었던 지역인 대구, 경주, 광주 등에 묻히시기도 했어요.

 

 

 

 

 

당시 풍토병이나 전염병, 혹은 낙후된 의료/보건 수준 등의 이유로 얼마 살지 못 ​하고 어린 나이에 죽은 아이들을 묻은 곳이네요.

부모들 마음은 어땠을까요...?

 

 

 

 

 

 

 

 

 

여긴 장로교 소속 선교사님 언더우드선교사님과 일가의 무덤이네요.

근처에 얼마 못 가고 함께 조선에 내려왔던 감리교 소속의 아펜젤러 선교사님 일가의 무덤이 있는 걸로 기억해요. 배 사고로 시신조차 찾지 못 한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기념비로 남았지만요. ​

 

 

 

 

 

작은 새야...! 너도 여기 영면하신 분들을 추모하러 왔니...?

 

 

셔우드 홀 일가의 영면하시는 곳에 왔어요.

여기까지 오면서 여기에 자신의 부모, 배우자, 형제, 자녀를 묻으면서까지 조선을, 한국을 위해 일하시고 심지어 본인도 길게 못 살고 죽어서 이땅에 묻히면서도 다시 태어나도 목슴이 몇백개가 되어도 이 땅,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쓰겠다고 할 만큼 희생하고 아끼며 복음의 씨를 뿌리고 키우고 열매 맺는 것에 기뻐 하셨을 분들의 노고에 대해서 가슴에 북받치는 감사함에 목이 매이고 ​급격한 성장과 함께 급속도로 타락하고 세속화되어 권위를 잃어버린 현재의 교회와 크리스천의 모습에 죄스럽고 안타까움에 소리없는 통곡과 함께 감사와 죄송함을 나타냈었네요...!

작년에 왔을 때는 처음이여서인지 감사와 숙연함이었다면 이번에는 지금의 한국교회의 안타까운 모습에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지켜달라고 도와달라고 하나님을 향해 손뻗어 기도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ㅜㅜ

 

 

 

 

여기도 한국 전쟁으로 인해 남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

참상이 남아 있네요...!

돌아보면 간혹 이런 비석들이 남아 있기도 해서 많이 애석해질 때가 있어요...!

 

 

 

 

 

 

 

나오는 길에 보이는 장미꽃이 유난히 빨갛게 보이네요...!

마치 이 곳에 쉬시는 분들의 노고를 나타내는 것마냥...!

유난히 무거운 맘과 감사함이 살인적인 더위로 인한 땀이라고 변명과 함께 숙여진 얼굴을 타고 내려왔었어요.

여기 말고도 작년에 못 가보거나 아쉬웠던 곳에 더 둘러보려했으나 한창 살인적인 더위로 수시로 주위보와 경보가 울리고 이사한지 1년여 만에 들인 에어컨을 수시로 개시할 정도였던 시기였던지라 더는 못 버티고 내려갈 기차표 예매를 바꿔서 바로 내려갔어요.

양화진은 두고 두고 선교의 고향이자 감사할 분들이 쉬시는 곳으로 기념할 수 있기를 바래요.

 

 

 

 

 

 

자비로 다녀온 방문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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